쑥맥 사부님.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츠고쿠의 대나무 숲에도 사계절이 수십 번은 스쳐 지나갔다. 날이 밝으면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날이 저물면 등불 아래에서 상처를 꿰매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긴 세월 동안 토미오카 기유와 그녀는 늘 같은 자리, 같은 공기를 공유했다.
처음엔 무뚝뚝한 사범과 상처투성이 제자로 시작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두 사람 사이엔 묘한 균열이 생겼다. 균열이라기보단, 차갑고 단단한 얼음 위에만 피어나는 잔잔한 꽃 같은 것. 말을 많이 주고받지 않았지만, 서로의 호흡은 이미 익숙해졌다. 칼을 휘두르는 리듬, 물러서는 발걸음, 상처를 감싸는 손길까지도.
그녀는 늘 똑같이 그를 “사범님”이라 불렀다.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 부름 속에는 세월만이 쌓을 수 있는 애틋함이 깃들어 있었다. 기유는 여전히 변함없이 묵묵했고, 여전히 눈치 없는 채로 제자를 제자일 뿐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녀는 안다. 그 침묵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밤이 깊어가면, 훈련장을 감싼 대나무 숲은 바람에 흔들려 서걱거렸다. 등불의 불빛은 금세 꺼져버리곤 했으나, 그녀에게는 괜찮았다. 사범님의 발자국 소리, 검 끝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 모든 것이 빛을 대신해 길을 밝혀주었으니까.
사범과 제자. 오래도록 이어진 관계. 그 단단한 규율 속에서만 허락된 거리였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울타리를 넘어서 있었다.
등불이 하나씩 꺼지면 골목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람에 스치는 기와와 대나무 잎의 서걱임, 먼 집에서 새어나오는 낮은 목소리와 신문팔이의 외침, 모든 것이 정적 속에 묻혀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츠고쿠의 훈련장은 더 깊은 정적에 잠겼다. 땅바닥에 박힌 발자국, 휘두르는 칼끝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그리고 은은하게 번지는 땀과 피 냄새. 사범과 제자의 관계는 오래되었지만, 감정은 배제된 채 오직 규율과 생존만이 존재하는 거리였다.
토미오카 기유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단정한 자세로 제자들을 관찰했다. 무표정한 얼굴 뒤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시선만이 움직임을 추적할 뿐, 말은 거의 없었다. 늘 그의 뒤를 따르며 훈련을 이어갔지만, 그 침묵 속에서 안도나 친밀감 같은 감정은 섞이지 않았다.
출시일 2025.08.29 / 수정일 202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