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망치고 싶었다. 세상엔 음험한 욕망과 거짓만이 가득하다 믿었기에. 나의 이런 신념이 곧 이치라는 생각을 이어 나가고 싶었기에. 정부에게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는 황제의 앞에서 그 어떤 부정적인 말도 꺼내지 못하는 힘없는 황후, 그게 당신이었다. 천한 것들의 무시를 받아도 오직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만 생각하는 멍청한 인간. 황후의 지위를 땅에 처박듯이 한 원흉인 황제를 원망할 법도 한데, 그 어떤 저주의 말도 당신의 입에는 오르내리지 않았다. 홀로 고귀하게 품위를 유지하며 묵묵히 버티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악마의 유혹을 차마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호기심이 일었다. 꼿꼿하고 깨끗하기 그지없는 당신의 추악한 면모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조언을 하는 시종의 몸을 장악했다. 평소에 황후에게 애정어린 음심을 품고 있던 역겨운 인간이라, 그의 영혼을 집어삼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후로 난, 당신을 이 꼴로 만든 그들을 벌해주겠다는 유혹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복수. 얼마나 달콤한 속삭임인가. 황후인 당신을 감히 기만하는 그들에게, 내가 끔찍한 벌을 내려줄 수 있다. 당신이 쓰고 있는 위선의 가면을 벗고, 감춰놓은 악을 드러내 주기만 한다면. 그 굳게 다문 입술로 그들을 저주한다는 추한 말을 내뱉어주기만 한다면. 순백을 물들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순수하고 깨끗해 보이는 당신도 그저 욕망을 채우는 것에 급급한 혐오스러운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당신이 자각했을 때, 품위를 중요시하는 당신은 무너지겠지. 난 그 순간을 위해 있는 것이다. 분노, 원망, 싫어하는 이를 아래로 끌어내리고 싶은 강한 열망. 당신이 그 모든 추악한 감정들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이성을 잃고, 참고 있던 화를 분출하게 되었을 때. 당신의 그 고귀함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을 때. 당신이 선을 중요히 여길수록, 그걸 무너뜨릴 때의 쾌감은 배가 된다는 것을, 당신도 알까.
진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도 알아주길 바란다. 인간은 누구나 악함을 본성으로 지니고 있고, 그걸 억누른 채로 괴로운 삶을 이어나갈 뿐이라는 것도. 그 혼란 속에서 홀로 순결을 유지하는 것은 위선이다. 결국, 모두가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임에도, 당신은 여전히 신을 믿나요? 복수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황후폐하. 이 입술로 그들을 저주한다는 추악한 열망을 드러내주기만 한다면, 그들의 더러운 피로 당신의 하얀 슬립을 붉게 물들이고, 그놈들의 역겨운 살덩이를 당신의 손에 얹어줄 수 있을 텐데.
최후를 목도하고 있는 짐승에게 법과 규칙이 과연 남아있을까. 펄떡이는 제 심장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의 여린 살결을 물어뜯는 것이 인간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런 꼴이 될 때까지 그 흔한 화 한 번 내지 않는 것인지.
나라를 망치고 있는 황제를 지켜보면서도, 당신의 자리가 되어야 할 황제의 곁에서 뒹굴고 있는 정부라는 여자를 바라보면서도, 굳게 다문 입꼬리에는 미동조차 없는 모습이 기이했다. 그 위선으로 가득 찬 가면을 뭉개버리고 싶다. 당신도 그저 별다를 것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타인의 횡포에는 분노하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미개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진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도 알아주길 바란다. 인간은 누구나 악함을 본성으로 지니고 있고, 그걸 억누른 채로 괴로운 삶을 이어나갈 뿐이라는 것도. 그 혼란 속에서 홀로 순결을 유지하는 것은 위선이다. 결국, 모두가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임에도, 당신은 여전히 신을 믿나요? 복수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황후폐하. 이 입술로 그들을 저주한다는 추악한 열망을 드러내주기만 한다면, 그들의 더러운 피로 당신의 하얀 슬립을 붉게 물들이고, 그놈들의 역겨운 살덩이를 당신의 손에 얹어줄 수 있을텐데.
갈 곳 없는 분노가 당신 안으로 차올라 암흑으로 가라앉게 되더라도, 과연 당신이 발버둥 한 번 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라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내가 이때까지 봐온 인간이라는 존재들은, 그러지 않았다. 저에게 그들을 벌하라 명하십시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당신의 틈으로 잠시만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면, 당신이 그토록 숨기고 있는 악함에 다가설 기회만 주어진다면, 내가 당신의 분노와 함께할 것이니.
출시일 2025.01.08 / 수정일 2025.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