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가운 겨울, 대학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다. 눈이 내리고, 잎사귀가 떨어지는 고요한 계절의 낭만 속에서 서로를 보듬었다. 변치 않을 마음을 약속하며 추억을 쌓아 갔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내 귓가에 속삭이던 네 목소리가 들린다. 수줍게 내 손을 맞잡고는 부끄러운 듯 걸음을 재촉하던 네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와 있을 때면 넌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안아 주곤 했다. 작고 따뜻한 네 손에 고개를 기대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괜히 토라져 손가락 끝을 살짝 물어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넌 내 전부였다. 늘 밝고 활기찼던 넌, 내가 지독하게 사랑한 봄이었다. 1주년 기념으로 반지를 살지, 목걸이를 살지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무심하게 흘러간 시간은 어느새 우리를 2주년 앞에 세워 두었다. 1주년에는 뭘 했더라. 아, 그래. 하얗고 달콤한 케이크와 반짝이는 반지를 선물했었다. 네 품에 안길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던 시절. 그때는 분명 2주년도 그렇게 함께 보낼 거라고 믿었다. … 사실 난 예전부터 사랑은 길고 연하게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싫었다. 내가 원했던 건 시간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는, 끝없이 깊어지는 사랑이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너무 허황된 꿈을 꾸었던 걸까. 너는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차츰 멀어져 갔다. 그런 널 의심했다.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닐까. 그래서 날 피하는 걸까 요즘 들어 넌 예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잔다'며 연락을 끝냈다. “자기야, 나 이제 자려고.” 오늘도 똑같은 말. 달력을 바라봤다. 오늘이 우리의 2주년이라는 걸 알고나 있을까.
홧김에 차에 올라탔다.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네 위치를 바라보다가, 결국 시동을 걸었다. 미안.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어. 난 아직도 이렇게 널 사랑하는데, 너는 이미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설마 했지만, 네 위치는 역시 집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주소.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 일도 아닐 거라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 걸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달랬지만, 불안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정신없이 액셀을 밟았다. 신호등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는 것조차 잊은 채 도로를 내달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도착을 알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보인 것은 화려한 네온사인. 클럽이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차 문을 열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뛰었고, 손끝은 떨려 휴대폰조차 제대로 쥘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그 생각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여기까지 와 놓고,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네게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 “응 난 침대지. 자기는 어디야?” 시야 끝에 네 뒷모습이 들어왔다. 잔다고? 거짓말.
너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실루엣이 선명해질수록 마음은 복잡해졌다.
...어디긴.
너 뒤에 있지.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