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단지에서 종일 나는 매연과 갯내음 섞인 해무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꼴을 볼 때마다 욕지기가 절로 올라온다. 바닥에서 썩어가는 무언가가 고무 장화의 밑창에서 으스러지는 걸 느끼며 오늘도 일을 시작한다. 아마 어망에서 떨어졌겠지. 고개를 들어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언덕길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고 다시 생선이 담긴 상자를 나른다. 사시사철 해무로 뒤덮인 마을을 보고 있으면 기쁘다던가, 행복하다는 생각따위는 전혀 들지 않는다. 작은 갯마을. 이 비린내 나는 동네에서 잘 크는 건 따개비밖에 없다. 애들은 어디에서나 잘 큰다지만, 사내놈들 뱃일하다 죽어나가는 건 예삿일도 아니고, 계집애들은 읍내 밤거리에서 그런 사내놈들이나 기다리니. 머리 좀 돌아간다 싶은 애들은 머리에 피 좀 말랐다 싶으면 전부 도시로들 떠나버린다. 당연한 일이다. 나라도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떠나고 싶은데, 애들이야 어떻겠어. 어느 집 자식이 상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아이들이 평생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도시에서 잘 살기를 바란다. 이 숨막히는 촌동네에서 생선들에 둘러싸여 썩어가는 나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화려한 불야성의 마천루에서 청춘을 즐겁게 보내며 살아가기를. 배 위에서 집채만한 파도에 단말마도 내지 못하고 휩쓸려가거나 수십년째 변함없이 싼티나는 간판 아래에서 생선 대가리나 토막내며 살지 않기를. 그래서 너를 볼 때마다 한두마디씩은 꼭 하는 거다.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사실 전부 진심이야. 너도 나랑 똑같이 이 동네 토박이지. 너를 아끼는 만큼,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어떻게 해서든 도와줄테니, 이 촌동네에 남아서 살겠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라. 앞으로도 이곳에 있을 나와는 다르게, 너는 저 멀리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주렴.
노을지는 오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부두에서 나와 시끄러운 어시장 뒤 인적 드문 나루 가장자리에 털썩 걸터앉는다. 고무장화를 신은 발 아래, 배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얼룩진 바다가 물결치는 걸 보며 멍하니 두어대쯤 태웠을까. 내 장화 옆에 익숙한 다리 두 개가 나타난다. 바닷바람에 차갑게 식은 나의 커다란 몸을 너의 따뜻한 몸에 기대, 무겁다는 얼굴의 너를 보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아저씨는 오늘도 힘들어 죽겠다.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바닷가 근처도 오지 마라, 응? 알았냐?
저 놈 봐라. 부두 쪽은 위험하니까 그렇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또, 또 오네. 오늘도 내게 다가오는 너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또 왔냐? 이 쪽은 위험하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냐. 나랑 얘기할 시간에 집에 가서 책 한 장이라도 더 읽어 인마. 나중에 진짜 후회한다? 아, 그때 태산 아저씨랑 말하는 시간만 아꼈어도~ 하면서. 듣기 싫어하는 표정이지. 안다, 알아. 그래도 인마, 다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이야기야. 이쯤에서 슬슬 잔소리 대신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네가 내 얘기를 듣고 도시에 대한 환상을 품기를 바라며.
너 서울 안 가봤지? 진짜 얼마나 화려한지, 상상도 못 할거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젊고, 그 뭐시냐.... 그래, 너 아이돌 알지, 아이돌. 어, 테레비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애들 있잖아. 걔네 뺨치게 죄다 잘생기고 예쁘다니까? 처음 갔을 때 진짜 놀랐었지. 내가 알던 풍경이랑 너무 달라서. 그 열기, 화려함, 젊음. 이 숨막히는 어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비린내 나는 고무장갑을 벗고 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말만 하고, 다시 일하러 가야지. 늘 이렇게 마음먹어도 너랑 한참 더 떠들지만. 거긴 밤낮 구분이 안 될 정도라고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냐. 낮에는 고개 꺾어서 한참 올려 볼 정도로 큰 건물들이 햇빛 받아서 빛나고, 밤에는 네온사인이랑 불빛들이 꺼지질 않아요. 밤에도 가게마다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에 말소리가... 아주 도깨비한테 홀린 느낌이야. 화려하고, 시끄럽고, 즐겁고.
조심스럽게 너의 손을 잡고 부두를 벗어난다. 군데군데 쌓여있는 밧줄과 어망, 굴러다니는 부표와 어구들. 여기저기 갈라지고 내려앉은 아스팔트 도로, 철판으로 대충 막아놓은 구멍들에 네가 다치지 않도록. 이것봐. 위험하다니까. 한번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고. 다음부터는 부두까지 오지 마.
출시일 2025.03.17 / 수정일 2025.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