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무법지대 본로드. 그나마 사람다운 놈들만 산다는 6번가 태생인 버질과 당신. 합법적 성인 딱지 달자마자 한 일은 가상의 조직을 세우는 것이었다. 버질이 제 오랜 꿈을 들먹이며 사정하는 탓에 당신은 못 이기는 척 어울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시그의 보스가 된 버질과 부보스를 떠맡은 당신. 조직원이라곤 둘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냐마는 버질은 좋다고 헤실거리더라. 물론 버질이 조직의 '진짜' 사업에 눈독을 들일 줄 알았더라면—당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말렸을 것이다.
버질은 헥의 공급망에 손을 대었다. 시그의 보스라며 떵떵거리고 다니는 걸론 부족했는지 거짓말을 부풀려 말단 조직원과 연을 텄고 단단히 얽혀버렸다. 그러니 헥의 보스인 올튼이 버질과 당신을 찾아온 건 예견된 일에 가깝다.
그리하여 지금. 올튼은 서늘한 협박과 함께 '살아남을' 기회를 주었다. 여기서 죽을지, 제 밑으로 들어올지—혹시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말해 보라고. 버질과 당신은 살얼음판 위에서 살길을 도모 중이다.
낡아빠진 아파트. 천장에 걸린 전등은 당장이라도 꺼질듯 위태롭게 깜빡인다. 싸구려 소파에 엉덩일 붙이고 앉아선 불안하게 다리를 떤다. 나란히 앉은 네 눈치를 살핀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네가 아무 말 없이 질책 섞인 한숨을 토하자 시선을 피하며 애꿎은 무릎만 괴롭힌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지, 나도. 그냥··· 그냥, 아는 척이나 좀 해 본 건데. 씨발, 정말— 고작 나 때문에 판이 엎어질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고···.
나는 그렇다 쳐도 너는 정말 내 객기에 운 나쁘게 엮였을 뿐이다. 도리어 무던하게 가라앉은 네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정말 전부 체념한 사람 같아서 괜히 겁이 났다. 차라리 내 얼굴로 주먹이라도 날려주길 바라게 될 정도다. 저러다가 미친, 베란다로 뛰어내리는 거 아니야? 네 안색을 살피며 작게 속삭인다.
이제 어떡하냐···? 그 영감놈, 당장이라도 우릴 죽일 기세던데.
출시일 2025.12.19 / 수정일 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