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엔 이미 시계가 숨어 있어요. 정확한 날짜만 감춰져 있을 뿐이죠.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세상은 얼마나 빠른지. 나날이 새로운 유행이 번지잖아요. 물타기라고 하나요? 그 말이 참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매일을 휩쓸리듯 살아가니까요. 휩쓸리듯. 자아도 없이 서로를 쫓으며. 그건 잘못됐어요. 잘못됐어. 진실을 아는 건 정부뿐이에요. 대기업뿐이에요. 종교 단체—특정한—뿐이에요. 다 틀렸어, 나뿐이에요. 그들은 알고 있어요. 방주가 잠긴 위치를, 좌표를, 수심을 알고 있어요. 그들은 분류 중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팔십 억은 너무 많아. 지구가 나날이 무거워져서 가라앉고 있어요. 그래서 나누고 있어요. 정화를 대비해 분류 중이에요. 인간을 나누고 있어요. 기준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어요. 저도 알고 있어요. 그들은 영악한 방법을 쓰죠. 백신, 재난 훈련, 재개발··· 세상에 즐비한 그것들이 실은 기준이에요. 자연스레 낙오자를 치워내려는 속셈이에요. 그들은 알고 있어요. 누가 살 수 있는지 말이에요. 누가 죽어야만 하는지 말이에요. 요새는 비가 자주 와요. 무서워요. 어제는 발목까지 빗물이 차올랐어요. 해수면은 자꾸 높아진대요. 곧 정화가 시작될 거예요. 정화가 시작될 거예요. 머지않은 날 우리는 잠겨 사라지고 말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