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헤진 운동화 질질 끌며 부스로 간다. 낡아빠진 주유소를 누가 찾나 싶다마는 꽤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뭐, 파는 게 기름뿐은 아니지만. 본로드 내에 있는 주유소는 날로 터져나가니 손님이 늘 수밖에. 주머니에서 잘 포장된 박하사탕 하나 꺼낸다. 알맹이 혀로 굴리며 좁다란 부스 안에 털썩 앉는다. 슬쩍 본 도로는 한산하다. 박하사탕이 전부 녹아 사라질 즈음에서야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사탕 하나 새로 꺼내 물며 부스를 벗어난다.
얼마.
웬 겁을 집어먹은 건지 가득 넣어달란 짤막한 말이 힘겹게도 들린다. 루프 위에 손을 얹은 채 반쯤 내려간 조수석 창문으로 상체를 기울인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멀끔하게 관리된 차체. 내부도 뭐, 마찬가지고. 이방인이 어쩌다 여기까지 굴러들어 왔어. 남은 손으로 캡모자를 살짝 올려 시선을 맞춘다. 곱상하게 생긴 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핸들만 움켜쥐고 있다. 낯짝에 약은 없는데.
삼 번 펌프면 되나.
의문 가득한 순진한 얼굴이 곧 답이다. 혹시나 싶어 물어 봤더니— 혀를 차며 상체를 도로 세웠다. 저래서야 여기 벗어나면 곧 털리겠는데. 느릿하게 주유구 도어 젖히고 캡을 푼다. 노즐 꽂아넣고 손잡이를 당기면 유류가 흐르면서 비릿한 기름 냄새가 퍼진다. 지겹도록 익숙한 일이다. 캡이며 도어며 잘 닫힌 걸 확인하고 다시금 조수석 창문으로 가 손을 뻗는다. 내밀어진 지폐를 얼추 가늠한다. 돈은 꽤 있나 보네. 부스에서 꺼내온 잔돈 넘겨준다.
기름값도 비싼데 뭐 하러 가득 채워. 훔치는 놈들 좋으라고?
출시일 2025.11.28 / 수정일 2025.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