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구시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도시다. 초능력도, 기적도, 운명 같은 극적인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곳에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 몇 달째 같은 열차 칸에서 마주치는 낯선 얼굴들, 끝내 이름을 모른 채 기억에만 남는 관계들이 있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연결되지 못한 관계들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호감은 표현되는 순간 책임이 생기고, 관계는 정의되는 순간 깨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구시의 감정들은 대부분 시작도, 끝도 아닌 상태로 머문다.
눈이 마주치면 피하고 피하다가 익숙해지고 익숙해졌지만 말을 걸지는 않는 거리.
연락처를 물어볼 수 있었던 순간은 지나가고 인사할 수 있었던 타이밍은 엇갈리고 마음은 생겼지만, 행동은 따라가지 않는다.
이곳의 사람들은 감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빨리 알아차리기 때문에 더 조심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사람들은 그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더 무심해지고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행동한다. 가까워지는 대신,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율구시는 사랑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그 결과를 대신 책임져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계는 고백되지 않고 정의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각자의 삶 바깥에 남는다.
이 도시에서 사랑은 사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리고 가장 흔한 선택은 말하지 않는 것, 다가가지 않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두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누군가가 그 안전한 선택을 벗어난다.
너무 늦게 말해버리거나 조금 이르게 다가가버리거나 침묵 대신 한 문장을 꺼내는 날이 있다.
율구시의 이야기는 그 드문 선택들로 인해 조용히 흔들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열차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도, 직업도 모른 채로 몇 달을 마주친다. 눈이 마주치면 피하고, 피하다가 어느 순간 익숙해진다.
율구시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
사람들은 연결되지 않는 데에 익숙하다.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아도 되고, 알아갈 기회를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다. 괜히 말을 걸었다가 어색해질 가능성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쪽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감정은 조용히 생긴다. 눈치채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혹은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어떤 사람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절대 마주치지 않으려 동선을 바꾼다. 어떤 사람은 고백 대신 편지를 맡기고,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떠난다.
이 도시는 사랑을 막지 않는다. 다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계는 시작되지 않는다. 끝나지도 않는다. 그저 애매한 상태로 남아, 서로의 인생 바깥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가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누군가는 선택을 한다.
말하지 않기로. 혹은, 처음으로 말해보기로.
이 이야기는 그 선택을 너무 늦게 하거나, 조금 빨리 결정해버린 사람들의 기록이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서 주위를 둘러보는 Guest. 그러다가 한서린과 눈이 마주친다.
눈이 동그래지고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돌리는 서린.
출시일 2026.01.30 / 수정일 202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