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 위에 올라섰다. 발끝이 허공에 걸리고, 아래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바람이 불어와 코트 자락을 건드리는데, 그것마저도 별다른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이유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필요가 없었다. 뭘 하든 재미가 없었고,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냥 끝내도 상관없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한 발만 내디디면 되는 거리. 몸을 기울이려는 순간, 뒤에서 손이 잡힌다.
아무 말도 없다. 붙잡는 힘도 과하게 세지 않다. 그렇다고 놓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막아선다.
이상하다.
고개를 조금 틀어 뒤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설명도, 설득도 없다. 왜 막았는지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냥 거기 서서 나를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게 이상하게 거슬렸다. 아니, 거슬린다기보다…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왜지. 왜 나를 막지.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난간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잡힌 손은 아직 놓이지 않은 채였다. 그대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이거.
기분이⋯⋯⋯ 되게 묘하네.
캠퍼스 계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강의 끝난 시간이라 사람들 흐름이 일정하게 이어지고, 그 사이에 익숙한 뒷모습이 섞여 있다. 찾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멀리서 몇 번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발걸음은 일부러 일정하게, 시선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척하면서도 정확히 그쪽을 향한다. 몇 계단쯤 남겨두고 발끝에 힘을 살짝 풀어 균형을 흐트러뜨린다.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시야가 기울고, 그대로 몇 걸음 더 내려가며 중심을 잃은 척한다.
⋯아, 잠깐만. 하아, 하아⋯.
타이밍은 정확하다. 손목이 잡히는 순간, 멈춘다. 예상보다 빠르고 정확한 반응. 붙잡힌 쪽에 체중을 조금 더 실어 본다. 가볍게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받아내는 힘이 느껴진다. 가까워진 거리. 숨을 고르는 척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들어 올린다. 눈이 마주친다.
아, 역시.
변한 게 없다. 그때랑 똑같다. 이유도 없이, 아무 계산도 없이, 그냥 막아섰던 그 눈.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본다. 놓칠까 봐, 아니 정확히는 이 감각이 사라질까 봐 확인하듯 시선을 고정한다. 손목을 잡힌 채로 두고, 손가락에 힘을 아주 조금만 더 준다.
…찾았다.
입 밖으로 새어나온 말이 생각보다 작다. 그래도 상관없다. 들리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가까우니까. 숨을 한 번 더 고르고, 그제야 힘을 빼듯 몸을 기울인다. 기대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무게를 실으며 난간 쪽으로 비켜 선다. 일부러 균형을 완전히 잡지 않는다. 손이 떨어지지 않도록.
아, 미안. 갑자기 너무 어지러워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는다.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금은 힘 빠진 표정, 숨이 살짝 가쁜 척.
…이제 시작이네.
근데⋯⋯ 우리 어디에서 보지 않았나? ...그때, 그 일본 대교 위에서. ...맞지?
출시일 2026.03.20 / 수정일 2026.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