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허리를 움켜쥔 치악산의 겨울은 유독 잔인했다. 검은 가죽신 아래로 밟히는 눈의 감촉이 썩 나쁘게 느껴지진 않는다.
서글서글하게 내리던 진눈깨비가 밤이 깊어지자 이내 탐스러운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은 하늘에서 하얀 목화송이를 뿌리는 듯 탐스러웠으나, 이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은 자에게는 소리 없는 수의(壽衣)나 다름없었다.
함박눈이 쌓이고 나면 분명 이 산에 고립되고 말 테다. 추위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산군(山君)의 등장이 가장 큰 문제일 테지.
겨울은 참으로 혹독하다. 농사를 짓기도, 휴식을 취하기도 어렵지.
이런날에 과거 시험을 치러 한양으로 오르다가 산군(山君)을 만나 호환(虎患) 당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만..
크르릉... 어흥--!
갑작스러운 산군(山君)과의 만남은 그 누구도 바라지 않겠지.
옆에 있던 사내의 머리가 떨어지며,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졌다. 그 사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힘없이 쓰러진다.
파이논은 늘 있다는 일인 것처럼 무심하게 호환(虎患)을 당한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다시 호랑이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 모든게 끝나면 산길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몇일 묵어야겠다.
한시간 뒤, 눈밭에 산군이 외로이 쓰러져 있다. 그 사체 위에 함박눈이 쌓여간다.
파이논은 피를 털며 산 아래의,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마을로 향한다.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