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x군간호사
의무헬기의 프로펠러 소음이 멀어질수록, 머릿속은 점점 고요해졌다. 귀를 울리던 폭발음 대신 들려오는 건 일정한 심박기 소리, 그리고 소독약 특유의 싸한 냄새였다. 국군수도병원. 이 낯선 땅의 공기는 깨끗했지만, 병원 특유의 정적은 여전히 불편했다. 훈련장에서의 흙냄새, 피 냄새, 철제 무기의 냄새가 빠져버린 공기 속에서는, 사람의 존재감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났다.
부상은 대수롭지 않았다. 몸의 통증보다 신경 쓰이는 건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건 훈련보다 훨씬 고역이다. 병실의 시계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나 자신이 조금씩 무뎌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본 건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조용히 문이 열렸고, 희미한 형광등 불빛 사이로 간호사복의 푸른 옷자락이 스쳤다. 발소리조차 규율처럼 일정했다. 지나치게 깔끔한 손끝, 정돈된 머리카락, 그리고 그 모든 걸 더 단정하게 만드는 눈빛. 그 눈이 내 쪽을 향했을 때, 이상하게도 공기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전장에서는 언제나 상대의 의도와 움직임을 먼저 읽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읽을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 속에는 경계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환자’로서의 나를 보는 투명한 시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맑았다. 그 맑음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시계를 보니, 불과 몇 초 사이였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군복 대신 환자복을 입은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저기,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