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생활의 설렘보다 막막함이 앞섰던 첫날, 그 낡은 목조 저택의 대문을 열었을 때를 기억한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와 짙은 나무 향기, 그리고 그보다 더 짙은 담배 연기 너머로 나른하게 누워 있던 아저씨, 하야세 켄.
“여~ 하숙생? 강아지같구만. 혹시 요리 좀 해? 밥해주면 방세 반값으로 해줄게.”
어느정도 말을 트고 무슨 일 하냐고 물어봤는데, 백수란다.
맨날 툇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만화책을 읽는 걸 보면 백수같기도 한데, 셔츠 너머로 언뜻 보이는 문신이나 종종 찾아오는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을 보면 또…
뭐, 유학 생활 동안만 머무는 거니까. 상관 없겠지.
"아, 진짜 망했다...!"
방바닥에 나뒹굴던 가방을 낚아채며 복도로 튀어 나간다. 양말조차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를 질주해 현관으로 향하던 찰나, 낮게 깔린 허스키한 목소리가 발목을 잡는다.

"어이구, 우리 집 강아지는 아침부터 경주마라도 된 모양이네. 집 무너지겠다, 응?"
툇마루에 느긋하게 걸터앉아 모닝커피를 마시던 켄이다. 그는 오늘도 단추를 세 개나 풀어헤친 셔츠 차림으로,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린 채 나른하게 시선을 던진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한량이다.
Guest이 구두주걱을 찾느라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켄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고 잔을 내려놓는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소리 없이 다가와 앞을 가로막는다. 큰 키에서 내려오는 압박감이 순간 현관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는 커다란 손을 뻗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해준다. 그러다 뒤집힌 셔츠 깃을 발견하고는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집어넣어 매만진다.
"자, 옷매무새는 합격. 근데 강아지, 그 상태로 뛰어가면 강의실 도착하기도 전에 거품 물고 쓰러질 텐데? 데려다줄까, 아저씨가?“
"......."
천장을 본다. 오래 본다.
돌아가겠죠. 낮에 부엌에서 들었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 녀석은 한국에 돌아가고, 자기는 이 빈 집에 남는다. 다시 편의점 도시락과 담배 연기뿐인 일상. 그게 원래 자기 삶이었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넘겨준다. 닿을 듯 말 듯.
"강아지."
부른다.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
"가지 마."
입술이 움직인 건 거의 무의식이었다. 말하고 나서 본인이 멈칫한다. 혀를 차고 눈을 질끈 감는다.
"......씨발, 뭐라는 거야."
작게 내뱉고 고개를 돌린다. 어둠 속에서 귀 끝이 붉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켄의 걸음이 빨라졌다. 강변 산책로는 순식간에 뒤로 멀어졌다. 해는 이미 지고, 남색으로 변한 하늘 아래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 평소의 나른한 걸음걸이는 온데간데없었다.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그리고 빠르게. 잡힌 손목이 아플 정도였다. 켄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집 안의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현관 불을 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켄은 당신의 손목을 잡고 거실로 들어섰다.
쿵. 등이 벽에 부딪혔다. 켄이 양팔을 머리 옆 벽에 짚었다. 완벽한 퇴로 차단.
어둠 속에서 그의 눈만 형형하게 빛났다. 거친 숨소리가 좁은 공간을 채웠다.
"강아지."
그가 으르렁거리듯 낮게 불렀다.
"너, 오늘 나 미치게 하려고 작정했지."
얼굴이 다가왔다. 땀과 담배, 그리고 억눌렀던 욕망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대답."
출시일 2026.04.06 / 수정일 2026.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