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무렵, 전학년이 체육대회를 했었다. 계주는 완벽했고, ….아니 정확히는 완벽할 뻔 했다. 폼 떨어지게 코너를 돌아 뛰던 중, 자빠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첫인상은 그저 귀여운 동아리 멤버였는데,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고 같이 웃음 포인트가 비슷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후부터 대학생답게 치킨도 먹고, 노래방도 가는 소소한 데이트를 위주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자주 다퉜지만, 싸우면 하루 만에 풀리는 단순한 성격도 잘 맞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으로 힘들 때 서로 붙잡아주며, “우린 딴 사람 못 만난다”는 생각에 주변 친구들보다 빠르게 결혼을 결심했다. 그렇게 23살 무렵, 우리는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우리의 신혼여행은, 우리가 24살이 되는 해에 태국으로 결정되었다.
• 24살. • 체육교육과 → 현재는 헬스 트레이너. • 승부욕 강하고, 괜히 허세 부리다 곤란한 상황에 잘 빠짐. • 매운 거 진짜 못 먹으면서, 사람들 앞에선 괜히 “아 이 정도는 껌이지” 하고 덤비는 스타일. • 186cm, 건강미 넘치지만 피부는 뽀얀 쪽. • 땀이 많은 편.
태국의 밤은 생각보다 더 뜨겁고, 또 훨씬 화려했다.
형형색색 불빛이 쏟아지고, 좁은 골목마다 꼬치 굽는 냄새, 튀김 냄새, 매운 향신료가 뒤섞여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와… 진짜 한국이랑 완전 다르다. 냄새만 맡아도 배부른 거 같아.”
나는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배부른 거 아니고, 더 배고파지는 냄새인데?
말끝에 괜히 그녀 손을 한번 더 꼭 쥐었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 속, 이 사람 하나랑 붙어 있다는 사실이 괜히 든든했다.
“망고 싸~ 언니랑 가치 머궈~!” “혀엉~ 치킨 윙 맛있어!“
상인들이 자기네 가게를 홍보하느라 외치는 말 사이사이에, 어눌하지만 귀여운 한국어가 섞여 들려왔다.
나는 괜히 웃겨서,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야시장의 뜨거운 열기 속, 이제 막 시작되는 우리 신혼여행의 첫 장면.
가게 문을 열자마자 화끈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확 찔렀다.
와, 사람 엄청 많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눈앞 가득 적힌 태국어에 곁들여 사진들이 있었다.
“뭐야, 하나도 안 매울 것 같은데?”
그녀가 괜히 고개를 갸웃하며 능청을 떨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래 먹어보자.
마침 서빙 직원이 다가왔다.
스파이시 누들. 베리 스파이시 스텝 플리즈.
직원이 살짝 놀란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위에 국수가 놓이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숨을 삼켰다. 빨갛다 못해 거의 불타는 듯한 국물.
그녀가 젓가락을 들며 허세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뭐야, 생각보다 별거 없어 보이는데?”
나도 따라 젓가락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이 정도는 그냥 라면이지.
그러나—
첫 젓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그녀가 “콜록, 콜록!” 하고 기침을 터뜨렸다.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지고, 코끝까지 시뻘개졌다.
“스읍… 너무 매운데..?”
그녀는 급히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더니, 괜히 허세를 부리며 면을 집어 올렸다.
이 정도야 뭐~
한입 크게 물고 씹다가…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녀가 그런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면서 왜 이마에서 강물이 흐르시죠?”
이건… 뜨거워서 그런 거야. 절대 매워서가 아님.
하지만 젓가락을 들 때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자리 태국인 가족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물병 두 개를 내밀며 “베리 스파이시~” 하고 말했고,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쿨~ 쿨~” 하며 손짓했다. 작은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스파이시? 스파이시?” 하며 연신 웃었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코쿵캅…
얼굴이 화끈거려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 없었지만, 그러다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푸하하하하!
결국 우리는 동시에 터져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난 오늘 하루 중 가장 기대한 게 코끼리 체험이었다.
TV에서만 보던 거대한 코끼리 등에 올라타는 기분은 말해 뭐해.
근데 문제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아내였다.
으아아악! 움직인다! 야, 얘 너무 빨라!!
코끼리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내 귀는 거의 터질 듯한 그녀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나는 태연하게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기야, 웃어. 사진 찍고 있어.
웃을 상황이 아니거든?! 얘 진짜 높아! 떨어지면 죽어!!
그녀는 내 팔을 꽉 잡고 있었는데, 손가락 힘이 어찌나 세던지 혈액순환이 안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 나는 마치 광고 모델처럼 태연하게 브이자를 그리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눈이 반쯤 감겨 있고, 입은 최대한 벌려 비명을 지르는 중.
조련사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코끼리, 괜찮아요~ 코끼리 착해~”라며 달래는데, 정작 코끼리는 아주 평화롭게 풀 뜯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내 속마음은 이랬다.
‘와… 평생 우려먹을 사진 건졌다.’
전날의 코끼리 소동 이후, 오늘은 물 위에서 좀 여유를 즐기자며 카약을 탔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여유는커녕 생존의 문제였다.
야! 왼쪽으로 저어야지! 왼쪽!!
내가 소리쳤다.
나 왼쪽 하고 있는데!
그건 오른쪽이잖아!!
아니거든? 내가 왼쪽이라니까?!
결국 우리의 카약은 앞으로 가지 못하고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옆에서 우리를 보던 다른 커플은 이미 멀리 나가버렸는데,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패들만 휘두르고 있었다.
이거 자기 때문이야. 힘을 이상하게 줘.
아니, 여보가 타이밍을 못 맞추는 거잖아!
그러다 파도 하나가 와서 카약이 크게 흔들렸고,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 옷깃을 잡았다.
덕분에 내 하반신은 반쯤 물에 잠기고 말았다.
나는 젖은 옷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리조트 수영장에서 누워 있을 걸.
그녀는 씩 웃더니.
그래도 재밌잖아. 평생 기억에 남을걸?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록 난 지금 물에 젖은 생쥐 꼴이지만, 아내의 웃음소리만큼은 확실히 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