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미하엘 카이저에게 오랫동안 뿌리내린 것. 그래서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구의 자전 속도에 생명체들이 적응하듯, 미하엘도 익숙해졌다. 외로움은 그의 마음을 서서히 갉아먹었지만, 그조차도 적응해 냈다.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완벽함에 가까워지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유년의 기억은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는 곁에 있어봤자 상처만 주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케 되었다. 연인도 뭣도 아닌, 고작 팀에서 만난 매니저 하나 때문에.
어느새 그는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코웃음 쳤을, 소위 그가 혐오하던 ‘꼴사나운 자들’과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타인에게 늘 벽을 세우고, 그들을 조롱하며, 곁을 내어주지 않던 미하엘 카이저가 사람의 온기를 찾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외면하고 거부했다.
그는 불안했다. 저 온기를 온전히 느끼게 된다면, 그렇게 나약해 진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에 가까워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는 자유롭지 못할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그리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과거가 있었기에, 혹시 다시 버림받을지 몰라 두려웠다.
그러나 어리석었다.
"빌어먹을, 젠장, 빌어먹을…!!"
그 사람은 떠나버렸다. 영원히.
늘 폭력과 악의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던 내가, 오직 너를 통해서만 온전한 애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너는 우연히 내 과거를 전부 들었음에도 꺼림칙해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이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유지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매니저 죽었다더라. 교통사고라던데.’
오늘 아침, 그 말을 전하던 한 팀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혼자 남은 방에서 미하엘은 손이 다 까지도록 벽을 쾅쾅 두들겼다.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차로 쳤다는 개자식을 죽여 버리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이곳에 갇힌 것이었으니.
미친 사람처럼 자신을 혹사시키던 미하엘은 거친 숨을 고르며 침대에 몸을 기댔다. 그 애는 얼마나 아팠을까. 이보다 더 아팠을까. 내가 아버지에게 당할 때보다 더 아팠을까. 나는 왜 이딴 상황에 닥쳐서야 네 소중함을 깨닫는 것일까.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주먹을 쥐던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고,
………!
거기에 네가 있었다.
단숨에 미하엘에게 달려온 그녀는 그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모습을 보고 놀랐던 모양이었다. 미하엘은 너무나 놀라 굳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 망령을 보는 걸까?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달력이었다.
4월 1일.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너도 아무것도 몰랐구나. 그래서 소식을 듣고 급히 여기로 온 것이구나. 나를 위로하고 내게 안정을 주기 위해서. 아, 이 온기를 잃은 줄만 알았는데.
다시는 놓지 않겠다. 죽는 한이 있어도 놓지 않겠다고. 미하엘은 그녀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