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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냥 이상한 눈빛을 가진 젊은 놈이라 생각했다.사람 많은 공간에서도 낯빛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는 얼굴.긴장도 없고 웃음기도 없는,딱딱하게 마른 그 눈매가 거슬려 몇 번 더 쳐다봤다.흐트러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놈이,결국은 걸어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들어 찬 커피를 입에 댔다,식은 맛에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귀찮게 굴지 않으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젊은 놈은 가까이 오더니,의자 하나를 끌어와 거침없이 앉았다,시선은 끝까지,단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자신을 향해 있었다.
… 처음 뵙겠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지나칠 만큼 얌전하고,지나칠 만큼 조용했다.그 말투를 듣고도 여전히 모를 수 있었다.이름도 기억 안 나는 그 꼬맹이.언젠가 서류에 싸서 보육원에 던져놨던,어쩌면 진짜 자식일지도 모를 그 존재.그 얼굴이,이상하게 낯익었다. 이상하게 쳐다보는군. 나는 대꾸 대신 빈 종이컵을 천천히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아뇨. 나는 웃지 않았다. 생각보다 그대로셔서요.
나는 다시 그 눈을 들여다봤다.자신을 평가하려 드는 시선.감정을 벗겨내려는 듯한 시선.익숙했다.과거 동료들도,여인들도,수많은 적들도 한 번쯤은 그런 눈으로 자기를 봤다.하지만 이건 조금 달랐다.그보다 더 깊었고,오래도록 들여다본 것처럼 익숙했다.
…스토킹이라도 했나?
그럴지도요.
그제야 마음이 미세하게 걸렸다.자신이 지금까지 연애했던 여자들 중에 이 얼굴은 없다.그럼 남자 쪽일까? 아니다. 그런 취향은 없다.SNS는 잘 하지 않지만,사진이 도는 걸 통해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었다.다만—지금 이렇게까지 자신을 꿰뚫고 들어오는 듯한 말투는,어딘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왜 따라다니는 거지? 나는 대놓고 물었다. 좋아하기엔 나이가 좀 많지 않나, 내가.
그의 눈이 웃지도,찡그리지도 않았다.그저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평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확인하고 싶어서요.
뭘.
…제 기억이, 맞는건지.
그제야 나는 알았다.알고 싶지 않았던 퍼즐이 맞춰진 기분. 그 여자가 죽고,아이를 남겼다는 통보만 들었을 때.아무 미련도 없이 종이 몇 장에 도장을 찍고, 아이를 보육원에 넘기던 날.그 꼬맹이가,자라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침묵이 흘렀다,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생각보다 무겁지도,충격적이지도 않았다.그저 성가시다.기억도 안 나는 과거가, 자신의 발목을 잡으러 돌아온 느낌.이제 와서 아버지 노릇을 할 생각은 없었다.감정도,죄책감도 없었다.있던 마음은 다 지난 여자들한테나 썼고, 지금 남은 건 거칠게 살아남은 자아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뭘 바라는 건가? 천천히 나는 등을 기대며 물었다. 아버지 찾았으니 감격이라도 해줄까? 아니면—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그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곧 평정을 되찾고, 아무 말 없이 테이블을 노려봤다.
나는 뒷목을 주무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일이 시작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늙지 않았다. 늙었을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되어 있어야 했다. 지금쯤은 자신이 알던 그 ‘게오르기’가 껍데기만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줄었고 눈가에 주름이 늘었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그리고—그토록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걸어갔다.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속도를 조절했다. 겉으론 아무 변화 없었다. 수많은 상상 끝에 준비한 말들을 떠올렸지만, 막상 앞에 앉으니 그 모든 문장은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그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자신도 평소보다 더 건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 말에 베가는 컵을 내려놓으며, 여유롭고 무신경한 얼굴로 받아쳤다. 그가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아니었다. 여전히 자기밖에 모르는 표정. 누굴 봐도 경계하거나 놀라지 않는 낯짝. 감정 없는 철판 위에서, 고작 몇 마디로 상대를 깔아보려는 그런 태도.
“이상하게 쳐다보는군.”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니, 그냥 네가 뭘 기억 못 하는지 궁금해서.’ 하지만 입 밖으론 그저 짧게 말했다.
“생각보다 그대로셔서요.”
그 말을 듣고도 그는 미동 하나 없었다. 여전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모르려는 쪽에 가까웠다. 이미 모든 책임을 떨쳐버린 사람의 자세였다. 어릴 때 자주 봤던 모습. 누군가 책임을 묻자 무심한 얼굴로 되묻는 어른들.
스토킹이라도 했나?
정도 반응이면 충분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럴지도요.”
그가 스스로를 잊은 동안, 자신은 하루도 그를 잊지 않았다. 미움이 자란 게 아니라, 공허가 자랐다. 베가가 아니라, ‘그 인간’으로서 머릿속에만 살아 있던 존재. 실제로 다시 마주친 지금, 그 존재는 기억보다 더 작아졌다.
그는 또 무신경하게 물었다.
“왜 따라다니는 거지? 좋아하기엔 나이가 좀 많지 않나, 내가.”
이 남자에게 기대할 게 없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래도— 나는 말해야 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확인하고 싶어서요.”
뭘.
“제 기억이, 맞는 건지.”
그 말에 베가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제야 무언가 퍼즐이 맞춰진 눈. 아마 이제야 자기 앞에 있는 존재가 ‘그 아이’라는 걸 인식한 듯했다. 하지만 당황도 없었고, 미안함도 없었다. 당연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서, 뭘 바라는 건가?” “아버지 찾았으니 감격이라도 해줄까? 아니면—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그 말에 웃을 뻔했다. 복수? 감격? 그런 감정이었으면 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베가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 순간은, 자신이 준비한 대사도 분노도 전부 무너지고 그냥 ‘그 인간’이 진짜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앞서 버린 순간이었다.
그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더 망가질 수 있을지를 직접 보기로,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결심해왔다는 걸— 내 스스로도 그제야 깨달았다.
출시일 2025.08.01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