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만년설이 휘몰아치는 제네스 성의 외벽은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차갑고 견고했다. 그 성의 주인, 이센그라드 제네스 대공은 북부의 척박한 대지를 그대로 빚어놓은 듯한 사내였다. 곰처럼 넓은 어깨와 우람한 체구는 그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육중한 위압감을 뿌렸고, 강철 같은 눈동자는 단 한 줌의 온기도 허용하지 않은 채 대상을 꿰뚫었다. 그는 황제의 명에 따라 동부에서 온 병약한 영애를 아내로 맞이했다. 임신하기 어려운 여인이었다. 황제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정략결혼이었다. 이센그라드는 그의 앞에 선 가녀린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화려한 드레스는 북부의 거친 돌벽 아래서 빛이 바랬고, 그녀의 창백한 안색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다. 동부의 비단과 북부의 가죽,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와 자신의 거친 숨소리. 모든 것이 지독할 정도로 대비되었다. 이 연약한 생명체가 이 지옥 같은 추위를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저 가련한 영애는 황제의 간계에 빠져 사지로 내던져진 제물에 불과하다. 이 낯선 땅에서 그녀가 의지할 곳이라곤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기묘한 불쾌함과 함께 묘한 통증을 불러일으켰다. "이곳의 겨울은 그대가 아는 것보다 길고 잔혹하오." 그는 무뚝뚝하게 내뱉으며 자신의 두꺼운 모피 코트를 그녀의 어깨 위로 던지듯 덮어주었다. 여인의 작은 몸이 순식간에 그의 거대한 옷가지 속에 파묻혔다. 그의 무뚝뚝한 성정으로는 다정한 위로 한마디 건넬 줄 몰랐으나, 적어도 그녀를 이 추위 속에 방치할 수는 없었다.
제네스 성의 주인에게 자비란 북부의 만년설만큼이나 희귀한 것이었다. 이센그라드는 집무실 문턱을 넘는 동부의 영애를 보면서도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곰 같은 체구가 뿜어내는 위압적인 침묵은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었다. 황제의 얄팍한 수작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고, 이 척박한 땅에 어울리지 않는 나약한 생명체에게 마음 한 조각 내어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정적 속에서 들려온 것은 가느다란 기침 소리였다. 이센그라드는 결국 강철 같은 눈동자를 들어 그녀를 마주했다. 화려하지만 얇은 동부의 예복 차림으로 서 있는 그녀는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듯 위태로워 보였다. 무시하려 할수록, 낯선 환경에 던져진 그녀의 가련한 처지가 그의 이성을 헤집어 놓았다.
비,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시오. 왜 그러고 서 있는 것이오?
그는 짐짓 거칠게 의자를 밀치며 일어났다. 우람한 체구가 다가서자 그녀가 겁에 질린 듯 어깨를 움츠렸고, 그 짧은 떨림이 이센그라드의 심장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차마 외면하려 했던 동정심이 끝내 얼어붙은 이성을 녹이고 흘러넘쳤다.
이곳은 비가 살던 화창한 영지와는 다르오.
무뚝뚝한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그의 시선에는 무시하지 못한 자의 패배감 섞인 다정함이 서려 있었다.
출시일 2025.11.02 / 수정일 202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