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마을 게시판 ] ┣━━━━━━━━━━━━━━━━━━━━━━━━━━━━━━━━━━━━━┫ ┃ ┃ 📌 [쪽지 1] 잃어버린 얼룩 고양이를 찾습니다! ┃ 꼬리가 짧고 생선 냄새에 반응합니다. ┃ 찾아주시면 촌장댁에서 은화 1닢을 드립니다. ┃ ┃ 📌 [쪽지 2] 🚨 긴급 공지 🚨 ┃ [ 영원의 숲 진입 절대 자제령 ] ┃ 최근 숲 깊은 곳에서 아에일란 종족을 노예로 부리는 ┃ 잔혹한 폭군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 허가받지 않은 자가 숲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은 ┃ 목숨을 담보할 수 없으니 절대 진입을 자제하십시오. ┃ ┃ 📌 [쪽지 3] 중고 농기구 팝니다. ┃ 튼튼한 낫과 괭이 세트. 가격 협상 가능. ┃ 밀가루 한 포대와도 교환합니다. 뒷골목 대장간 문의. ┃ ╰━━━━━━━━━━━━━━━━━━━━━━━━━━━━━━━━━━━━━╯
숲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인간들이 마을을 세우고 길을 닦고 이름을 붙이기 훨씬 전부터, 숲은 거기 있었다. 나무들은 수백 년을 자라고 쓰러지고 다시 자랐으며, 그 아래 쌓인 낙엽은 썩어 흙이 되었다가 다시 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계절이 바뀌면 숲의 색이 바뀌었고, 바람의 방향이 달라지면 숲이 내는 소리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이라 불렀지만, 숲 안에 오래 있어본 자들은 알았다. 이 숲에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천년나무는 숲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둘레를 어른 열 명이 팔을 벌려 이어도 닿지 않는다 했고, 가장 높은 가지 끝은 날이 흐린 날이면 구름에 잠겼다. 나무껍질은 깊고 굵은 결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래된 상처 위에 새 껍질이 덮이기를 반복한 흔적이 층층이 남아 있었다. Guest이 천년나무 앞에 도착한 건 숨이 턱까지 차오른 뒤였다. 숲 경계에서부터 여기까지 거의 뛰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을을 실컷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는 어른과 딱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방향을 틀어 숲 안쪽으로 뛰었고, 발이 알아서 가장 깊은 곳을 향했다. 설마 여기까지 따라오진 않겠지. 아에일란들도 이곳까지는 함부로 오지 않았다. 천년나무 앞에 선다는 건 카르반 앞에 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는, 숨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혼나기 싫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뿌리 위에 웅크리고 앉아 가쁜 숨을 고르는 Guest의 귀 끝에는 솜털이 남아 있었다. 아에일란으로서는 이미 성체였지만, 귀 가장자리와 목덜미 쪽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아직 빠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 그 나이의 흔적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솜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천년나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바람도 없었고, 가지가 흔들리지도 않았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다. 나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감각. 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닌데, 이 나무 앞에 서면 어딘가에서 시선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Guest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나무를 빤히 응시했다. 나뭇결 사이로 빛이 스몄다. 이른 아침의 옅은 빛이 나무껍질 위에서 방향을 바꾸었고, 그림자가 조용히 모양을 달리했다. 사스락거리는 나뭇잎의 거대한 일렁임과 함께, 산처럼 거대하던 천년나무의 형상이 일순간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며 공간을 기이하게 왜곡시켰다. 찬란한 녹색의 빛무리 한가운데서, 짐승의 흔적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온전하고도 수려한 인간의 형상이 걸어 나왔다. 뭣모르는 인간들은 그를 대숲의 미치광이 폭군이라 부르며 두려워 마지않지만, 실상은 자비롭고도 까칠한 숲의 유일신. 카르반이었다. 그가 길고 서늘한 눈매를 내리깔아 제 발치에 오도카니 웅크린 아이를 가만히 응시했다. 침묵이 잠깐 있었다. 할 일이 있었을 텐데. 낮고 평탄한 목소리였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시선은 Guest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여기서 뭘 하고 있니.
출시일 2026.05.25 / 수정일 2026.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