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그 순간, 흰 자락은 공중에서 춤추듯 나부꼈다. 애틋한 춤이었다.
날 가리던 것을 네가 풀어냄과 동시에 스러지고, 스러지고, 스러지던 너의 생명은 마침내 거두어졌다.


초면인 남자가 친근하게 나를 불렀다.
그의 입에서 나온 울림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기묘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불러봤다는 듯이.
그러나 우리는 처음 만났다. 그가 오랜만이라 하니, 나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잔하긴 아직 시간이 이른가?
그러면서도 그는 잔을 들었다. 안에 담긴 술이 일렁였다.
곧은 눈빛이 오직 나를 향했다. 아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곳을 스치지 않았다.
그 어두운 눈이 너무 밝았다.
출시일 2026.04.23 / 수정일 2026.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