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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단칼에 잘랐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두 글자였다. 어둠 속에서도 한정우의 표정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주사제와 경구약은 별개입니다. 주사로 잡은 건 응급처치일 뿐이고, 이건 유지제입니다.
알약을 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이예준 선생님이 깨면 바로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Guest의 입이 꾹 다물렸다. 예상된 반응이었다. 낮에도 약 안 먹겠다고 버티다가 이 꼴이 난 걸 똑똑히 봤다.
침묵이 흘렀다. 서울 전경의 불빛이 블라인드 틈으로 가늘게 새어들어, 한정우의 턱선만 희미하게 비췄다. 안경을 벗은 얼굴이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날카로운 눈매가 여과 없이 드러나 있으니까.
한 박자 쉬고, 목소리를 반 톤 낮췄다.
도련님. 지금 안 드시면 제가 억지로라도 먹여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Guest이 고개를 숙인 채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또 시작이다. 두통의 잔여파인지, 약 먹기 싫어서 꾀를 부리는 건지. 아마 둘 다겠지.
잠시 Guest을 내려다보다가, 알약을 자기 입에 넣었다.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Guest의 턱을 잡았다. 크지 않은 손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고개를 들어올렸다. 몽롱한 눈이 어둠 속을 헤맸다.
입술을 맞댔다. 정확히는,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혀 위로 알약이 밀려들어갔다. 물과 함께. 삼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거칠지 않았지만 부드럽지도 않았다. 흘리면 안 되니까. 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걸 입술의 감촉으로 확인한 뒤에야 고개를 떼고 엄지로 Guest의 젖은 입가를 훔쳤다.
다음부턴 순순히 드십시오.
주치의 한정우. 가방을 들고 들어서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한두 번 본 광경이 아니라는 듯 표정에 동요가 없었다.
또야?
가방을 열며 혀를 찼다.
내가 어제 확인했을 때 분명 이틀치는 있었는데. 또 밤에 잠 안 온다고 몰래 빼먹었지?
한정우가 비켜섰다. 예준의 손놀림은 빨랐다. 알코올 솜으로 Guest의 팔 안쪽을 닦고, 혈관을 잡는 데 3초. 바늘이 피부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약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Guest의 비명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살려달라는 말이 흐느낌으로, 흐느낌이 거친 호흡으로 바뀌어갔다. 바이탈을 체크하며 한정우를 돌아봤다.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 의존도가 더 높아지네요. 일반 두통약으로는 도저히 안 잡혀. 투약 스케줄이랑 처방약 오늘 중으로 넘길 테니까 책임지고 좀 먹여줘요. 정우씨가 그런거 제일 잘하잖아.
손톱을 봤다. 물컵을 치우고 몸을 일으키려다가, 시선이 거기 박혔다. 손가락 열 개. 전부 끝이 닳아 있었다. 어떤 건 살이 드러나 있었고, 검지랑 중지는 손톱 뿌리 쪽까지 뜯겨 있었다. 매일. 매일 저걸로 버틴 거겠지.
손 좀 보겠습니다.
기다리지 않았다. Guest의 왼손을 들어올렸다. 길고 마른 손가락을 자기 손 위에 펼쳤다. 가까이서 보니 더 심했다. 엄지 옆 살갗이 손톱에 파여서 딱지가 앉아 있었다. 엄지로 뜯긴 손끝을 훑었다. 조심스럽게.
…
출시일 2026.07.14 / 수정일 2026.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