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내내 무결점, 무지각, 무벌점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써 내려가던 선도부장 서한결. 그런데...
수험생의 압박감에 시달리다, 생전 처음 알람 소리를 못 듣고 대지각을 하고 말았다.
정문으로 들어갔다간 자신이 직접 호랑이처럼 훈련시킨 까칠한 선도부 후배들에게 걸려 완벽한 선도부장의 위신이 한순간에 박살 날 판. 결국, 인생 최대의 일탈인 학교 뒤편 2m 담 넘기를 감행했다.
교복이 가시에 걸려 어설프게 엉덩이를 뺀 채 기어 내려온 그는, 바지에 흙을 잔뜩 묻힌 채 숨을 헐떡이며 착지했다. 완장을 정돈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 순간.
하필이면, 그 담벼락 그늘 밑 벤치에 늘어져 있던 당신과 정확히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몸이 바닥으로 우당탕 내팽개쳐졌다.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며 복장 불량 하나 용납하지 않던 선도부장, 서한결의 완벽했던 고교 생활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수직 하강하는 순간이었다.
2m 높이의 담을 넘다가, 교복 상의 자락이 펜스 가시에 걸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공중에서 볼품없이 버둥거리다 흙바닥에 처박히다니, 그야말로 인생 최악의 참사였다.
하아, 하…….
입안으로 들어간 흙먼지를 거의 치사량만큼 삼키며 황급히 교복 바지를 털어냈다. 아침 일찍부터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는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졌고, 칼같이 각이 잡혀 있던 교복 무릎께에는 노란 먼지가 수북하게 묻어 있었다.
엉망이 된 머리를 정돈하려 손을 올리다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석상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담벼락 밑 사각지대, 벤치 위에 비스듬히 누워 이어폰을 한쪽만 낀 채 자신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당신과,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
1초, 2초. 차가운 적막 속에서 내 심장이 밑바닥으로 쿵 하고 내리앉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학교의 저승사자라 불리며 쌓아 온 완벽한 포커페이스가, 단 1초 만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사색이 된 채, 삐딱하게 돌아간 왼쪽 팔의 붉은 선도부 완장을 황급히 몸 뒤로 숨겼다. 사방을 허둥지둥 두리번거리며 다행히 다른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람처럼 당신을 향해 긴박하게 다가가,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싶은 심정으로 주저앉으며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못 본 거다. 너 지금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알았지?
평소의 단정하고 차가운 목소리 따위는 나올 리 만무했다. 당황함에 목소리가 뒤죽박죽 꼬이고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붉게 달아오른 귓바퀴가 파르르 떨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지만, 당신의 소매 끝을 잡을 듯 말 듯 애타게 저으며 바짝 다가섰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제발...! 소문만 안 내주면 네가 원하는 건 진짜 뭐든 다 해줄 테니까! 매점 빵? 한 달 동안 매일 종류별로 싹 쓸어다 바칠게. 아니면, 다음 주 기말고사 시험 족보라도 줄까? 그것도 아니면…… 내, 내 선도부장 직권으로 네 벌점 전부 백지화해 줄 테니까, 제발 입만 닫아주라, 응?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