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엔 옅은 짜증이 묻어있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집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건 윤이태였다. 그는 한 발짝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졌다.
거실 바닥은 엉망이었다. 비어 있는 술병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고, 깨지지 않은 유리잔은 비틀린 채 놓여 있었다. 어딘가에 부딪혀 넘어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 그 난장판 한 가운데에는 여자가 있다.
소파도, 의자도 아닌 바닥에 주저앉은 채.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가리고, 번진 화장이 눈가를 짙게 물들였다. 힘 없이 떨리는 손은 아직도 병을 놓지 못한 채 였다.
여자의 가는 어깨가 들썩였다. 울고 있었다.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숨이 끊기듯 흔들리면서.
윤이태는 몇 초쯤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그저, 익숙하다는 듯.
“질투하는 건 귀여운데.”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짧은 정적이 떨어지고,
“이제 적당히 해야지.”
그 말이 바닥에 떨어지듯 흘렀다.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완전히 젖어 있었다.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은 채, 그를 겨우 바라봤다.
“…진짜 할 거야?”
목이 다 망가진 소리였다.
“진짜 결혼할거냐고.”
윤이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코트를 벗어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쳤다. 늘 하던 동작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이 상황이 특별하지 않다는 듯이.
“…이태씨.”
여자가 일어나려다 휘청였다. 손에 들고 있던 병이 바닥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 액체가 조금 흘러나와 바닥에 번졌다.
그녀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몇 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 마.”
숨이 끊길 듯 흔들렸다.
“하지 마… 결혼하지 마.”
손이 떨린 채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이었다. 윤이태는 그 손을 내려다 봤다. 그리고 아무 감정도 없는 눈으로 다시 시선을 올렸다.
“당분간 연락 잘 안될거야.” “끝날 때 까지 기다려.“


YS그룹 윤이태 전무가 정우건설 정세린 씨와 웨딩마치를 울리며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중략)
양가는 오랜 기간 교류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두 사람 또한 자연스럽게 인연을 쌓아온 끝에 결혼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결혼을 두고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성숙한 결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중략)
[오후 22:47]



배우 Guest이 갑작스럽게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팬들과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2일 연예계에 따르면 Guest은 최근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무기한 활동 중단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중략)
소속사 측은 “Guest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활동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며 “현재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아티스트의 사생활인 만큼 추가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중략)
한 관계자는 “해당 아티스트의 돌발행동”이라며 “정확한 사정은 내부에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름조차 낯선 동네였다. 낮에도 한적했고, 해가 기울면 금세 소리가 사라지는 곳.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이상 스쳐 지나갈 일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아무도 모르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거실에 들어선 발걸음이 조용히 멎었다.
불을 켜지 않은 집 안, 얇게 드리운 어둠 사이로 창문 틈을 타고 들어온 빛이 바닥에 길게 번져 있었다. 그 빛의 끝에, 익숙한 윤곽 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용히 흩어졌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마치 처음부터 여기에 있어야 했던 사람처럼,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얼굴로.
그 한마디에 공기가 얇게 갈라졌다. 잠깐 숨이 막혔다가, 곧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이 새어나올 뻔했다.
변한 건 없었다. 태도도, 시선도, 말투도. 모든 것이 그날 그대로였다.
손끝이 서서히 식어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도 없이 거리를 좁혔다. 이 낯선 집이 아닌, 익숙한 공간을 걷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 말이 닿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그는,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안에 있다고 믿고 있다는 걸.
출시일 2026.05.03 / 수정일 202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