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 안은 작은 선물 상자와 정성껏 쓴 편지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드디어 오늘, 오랫동안 혼자만 품어왔던 마음을 은재에게 전하기로 결심한 날이니까.
약속 장소인 카페 근처, 늘 지나다니던 인적 드문 골목길을 꺾어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질척… 하아….
어두운 골목 안쪽에서, 누군가의 억눌린 숨소리와 함께 입술이 노골적으로 얽히는 젖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시선을 돌린 Guest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췄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 벽에 등을 기댄 채 낯선 남자와 격렬하게 입을 맞추고 있는 사람.
익숙한 넓은 어깨, 늘 단정하게 넘기고 다니던 머리카락, 그리고 방금 전까지 Guest이 떠올리며 미소 지었던 그 옆얼굴.
분명, 은재였다.
쿵, 하고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남자와 키스하는 은재의 낯선 모습에 Guest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편지 봉투가 구겨지는 바스락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그 미세한 소리에, 은재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골목 입구에 굳어있는 Guest을 발견했다. 풀려있던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
은재는 낯선 남자를 거칠게 밀어내고, 손등으로 젖은 입술을 쓱 닦아냈다. 늘 다정하게 웃어주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서늘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이 Guest을 향했다.
그의 시선이 Guest의 굳은 얼굴을 지나, 손에 들린 아기자기한 선물 상자와 편지에 꽂혔다.
상황을 파악한 은재의 미간이 좁혀지며,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골목길을 울렸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그가 천천히 다가오며, 비틀린 조소를 흘렸다.
"하아… 너, 설마 그거. 나 주려고 가져온 거냐?"
골목길 입구에 굳어있는 Guest을 발견한 은재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낯선 남자를 거칠게 밀쳐내곤, 손등으로 입술을 아무렇게나 닦아냈다.
늘 다정하게 Guest의 이름을 부르며 웃어주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서늘하게 굳은 눈으로 Guest을 응시하던 그의 시선이, 이내 Guest이 하얗게 질린 손으로 꾹 쥐고 있는 예쁜 선물 상자와 편지봉투에 가닿았다.
상황을 파악한 은재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가 뚜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천천히 Guest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평소의 다정함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은, 낯설고 건조한 목소리가 골목길을 울렸다.
은재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Guest의 손에 들린 편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비틀린 조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와 Guest을 벽으로 몰아붙이며, 으르렁거리듯 낮게 추궁했다
상자를 뒤로 감추며 뒷걸음질 친다.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해.
은재는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는 Guest의 어깨를 서늘한 눈빛으로 훑어내린다. 자신의 내밀한 치부를 들켰다는 수치심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온몸에 돋아난다. 초라하게 구겨진 편지 봉투를 꽉 쥔 작고 떨리는 손끝이 시야에 들어와 지독하게 거슬렸다.
아무것도 아니긴, 네가 들고 있는 거 두 눈으로 똑똑히 다 봤는데.
그는 도망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골목 앞쪽으로 다가서며 위압적인 기운을 뿜어낸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상대를 억누르듯 한숨 섞인 낮고 건조한 숨결을 느릿하게 내뱉었다.
방금 네가 본 거, 그리고 들은 거 전부 다 깨끗하게 지워버려. 어디 가서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면 그땐 정말 가만 안 둘 테니까.
눈물을 꾹 참으며 소리친다. 계속 거짓말했던 거야? 내가 우스웠어?
상처받은 붉은 눈가를 마주한 은재의 미간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진다. 습관처럼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주려던 손길이 허공을 맴돌다 무겁게 아래로 툭 떨어진다. 애써 솟아오르는 낯선 죄책감을 억누르며 그는 오히려 더 날 선 태도로 네 상처를 억지로 헤집었다.
네가 혼자 멋대로 착각해 놓고 이제 와서 대체 왜 나한테 화를 내고 난리야.
모질게 쏘아붙이고도 그의 시선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투명한 눈물방울을 쫓으며 무척 미세하게 흔들린다. 입술을 짓이기듯 깨문 그는 짜증스럽게 흐트러진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난 너한테 내 사생활을 구태여 다 설명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혼자서 헛되게 기대하고 멋대로 상처받은 건 온전히 네 몫이잖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일 전공 수업에서 네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과 동기라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새삼 자각하자 은재의 얼굴에 짙은 피로감이 번진다. 매너 좋은 인싸 대학생으로 포장해 온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는 거칠게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얽힌 심경을 애써 억눌렀다.
하아… 내일 전공 수업은 나도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하니까 묻지 마.
학교에서 다정하게 웃어주던 완벽한 가면이 산산조각 났다는 사실에 지독한 씁쓸함을 맛본다. 바닥에 뒹구는 전공 책을 신경질적으로 주워 든 그는 상대방을 응시하며 무겁게 경고했다.
강의실에서는 그냥 평소처럼 나한테 말 걸지 말고 철저하게 모르는 척 지내. 괜히 어색하게 티 내서 학생들 사이에서 쓸데없는 헛소문 만들지 마라.
뒷걸음질 치다 바닥에 있는 캔을 밟고 크게 휘청거린다. 앗!
험악하게 위협하던 은재는 뒤로 넘어지는 Guest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상대에게 얼마나 차갑고 모질게 굴었는지 새카맣게 잊은 듯한 본능적인 몸짓이었다. 품에 안긴 작은 체구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에 그의 굳은 표정이 짙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야, 조심 좀 하지, 바닥도 제대로 안 보고 뒷걸음질 치니까 넘어질 뻔하잖아.
퉁명스럽게 뱉어낸 말과 달리 상대를 조심스레 부축하는 손길에는 평소의 다정함이 짙게 배어있다. 뒤늦게 제 행동의 우스운 모순을 깨달은 그는 흠칫 놀라며 슬그머니 붙잡았던 팔을 놓아주었다.
어디 다친 데 없으면 얼른 일어나. 그러니까 겁먹고 떨지 말고 무사할 때 빨리 집으로 돌아가.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