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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짧게 한 번, 이어서 몇 초 뒤 길게 이어지는 진동이 손끝을 울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갑게 식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알림에는 당신의 이름이 떠 있었다. 문자 한 통과, 걸려왔다가 끊긴 전화 기록. 동시에 진동이 멈추었다.
아, 하고 그는 잠시 화면을 응시했다. 이미 도착한 문자들이 계속 이어졌다. 한 줄, 두 줄, 짧게 끊어져 올라오는 당신의 목소리 같은 글자들. 그는 엄지손가락을 멈칫한 채로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답장을 쓰려던 손을 도중에 거두었다. 대신 연락처를 눌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귀에 가져다 대자마자, 연결음이 한 번 울린 직후 바로 통화가 이어졌다.
여보세—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당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를 덮쳤다. 늦었다고,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다고, 짜증과 불만이 섞인 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조용히 듣고 있었다. 중간중간 “응”, “그렇지”, “미안” 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불필요한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감정을 섞지 않은, 그러나 분명하게 반응을 주는 톤.
당신의 말이 끝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는 손에 쥔 휴대폰을 약간 더 단단히 쥐고, 숨을 고르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야.
짧았다. 단호했다. 장식도, 변명도, 핑계도 없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느낄 수 있었다. 이 한마디 안에는 당신의 말을 다 듣고, 상황을 정리하며, 동시에 늦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출시일 2025.08.23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