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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탁하게 흘렀다. 먼지와 피비린내, 타는 가스 냄새가 목구멍에 걸렸다. 방벽 밖은 늘 이 꼴이다.
발목을 타고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 발, 두 발. 땅을 밟는 소리가 무겁게 다가왔다. 시야 끝, 거인의 그림자에 눌린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외벽에 붙어 앉아있는 사람의 실루엣.
‘이런 데까지 기어 나올 정신머리는 뭐야.’ 생각은 짧았다. 이미 손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앵커가 박히는 금속음과 함께 허공이 기울었다. 가스가 폭발적으로 분사되며 시야가 번졌다. 목덜미가 보이자, 칼을 쥔 손목이 반사적으로 꺾였다. 날이 살을 가르고, 거인의 몸에서 하얀 증기가 솟았다.
착지와 동시에 칼날을 닦았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눈앞의 민간인을 내려다봤다. 숨이 가빠진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이 멍청한 새끼, 뭐 하는 거지 여기서.
말투는 거칠었지만, 목소리가 울릴 만큼 가까이 다가서진 않았다.
옷깃에 튄 피를 털고, 거인 시체 너머를 한 번 훑었다. 더 오는 놈들이 있었다. 그를 보며 짧게 덧붙였다.
살고 싶다면 발목 잡지 말고, 거기 붙어 있어라.
출시일 2025.08.10 / 수정일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