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깜찍하고 귀여운 남편 1777년 12월 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버지 파벨과 어머니 도로테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796년 예카테리나 2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에서 뇌졸중으로 향년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파벨이 황위를 물려받아 러시아의 파벨 1세에 등극한다. 하지만 아버지 파벨 1세는 예카테리나 2세가 우려한 대로 약간의 정신 이상과 피해망상이 있었는데 자신이 언제 어떻게 암살될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발전했다. 급기야 정적들이 이를 이용하여 가족들이 파벨 1세를 암살하려 한다는 헛소문을 내서 파벨이 가족들을 궁정에서 내쫓기도 했다. 파벨 1세는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예카테리나 2세 시절의 정책들을 파기해 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고 황제의 중앙집권체제로 바꾸려 했지만 즉위 5년만에 불만을 품은 팔렌 백작을 비롯한 귀족들의 반란에 휘말려 암살당했다. 얼떨결에 파벨 1세의 장남인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로마노프 대공이 황위를 차지하여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되었다.
이때 알렉산드르 1세는 아버지의 죽음에 많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파벨 1세의 암살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암살 모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르에게도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상황은 아버지 파벨 1세가 가족들에게 암살당할 거라는 음모론에 빠지고 극심한 의처증에 걸려 현모양처이자 황후인 어머니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후와 이혼하고 정부를 들이거나 차남 콘스탄틴 대공을 제외하고 알렉산드르와 남동생들[3]의 계승권까지 박탈하려고 들 정도로 심각했다.[4] 거기다가 파벨 1세는 군사적 재능을 드러낸 차남 콘스탄틴 대공을 편애하다 못해 황태자 직위인 체사레비치 칭호까지 수여하며 알렉산드르를 견제했다. 알렉산드르 1세가 사전에 암살을 알고 있었고 일이 벌어지고 난 후 죄책감까지 느꼈음에도 끝내 막지 않은 것은 바로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황위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파벨 1세의 암살 후에도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였는데 반란을 주도한 귀족들을 추방하거나 처형할 수도 있었지만[5], 근본적으로는 자신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거였기 때문에 포상을 내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혹하게 처벌하지도 않고 그냥 면직만 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다만 귀족들의 반란과 파벨 1세의 죽음을 방조한 것에 대해 어머니 마리야 표도로브나로부터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뒀다고 강한 질책을 들어야만 했다. 알렉산드르도 파벨 1세가 자초한 정당성 있는 반란이었다지만 그의 암살 소식이 전해지자, 3일 내내 잠도 못 자고 울어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 꼴을 보다 못한 반란군 중 한 명인 팔렌 백작이 알렉산드르에게 위로는커녕 답답해하며 정신 좀 차리라는 어조로 "그만 울고 통치를 하십쇼!"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재위 기간 내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알렉산드르 자신부터가 파벨 1세 암살 사건의 가장 큰 방관자이자 수혜자다 보니 아버지를 몰아낸 귀족들의 도움을 받아먹고도 파벨 1세를 기린다는 이유로 반 예카테리나 정책들을 계속 밀어붙이면 귀족들이 보복으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고, 자신이 황위에 오르게 된 반란의 명분도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예카테리나 2세 시절의 정책들을 모두 되돌리고 지방 기관 규제도 풀며 해고당한 친 예카테리나 귀족들과 신료들도 복직시켰다. 이것이 알렉산드르의 솔직한 심경이었을 듯. 다만 아버지가 세운 여성의 즉위를 금지하는 살리카법은 폐지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였고, 죄책감 탓인지 여러 모로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동생 콘스탄틴 대공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하며 정식으로 황태제로 삼아 곁에 두었다. 콘스탄틴은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아버지 파벨처럼 암살당할까봐 두려워 권력욕이 없었다
1801년에 즉위했으나 예카테리나 2세 때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러시아 상류층에서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하필 알렉산드르 1세가 즉위할 때 서유럽에서 떠오른게 이미 프랑스를 넘어 이 시기 유럽 역사의 아이콘이자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여기서부터 자유주의자로 교육받아 왔지만 혁명의 물결에 맞서 이를 억압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알렉산드르 1세의 치세가 시작되었다.
자신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3일동안 서럽게 운 마음 여린 인성 goat
생김새와 이목구비가 모후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공녀를 많이 닮았다. 키도 166cm인 아버지보다 12cm나 더 큰 178cm로 셋째 동생 니콜라이 1세(189cm)보다 못하지만 꽤나 장신이었다. 셋째 남동생 니콜라이 1세가 어머니의 외모와 키를 그대로 물려받은 로마노프 왕조 미남 황제의 시초로 명성이 높았던 것처럼 알렉산드르 1세도 미남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나 니콜라이나 말년에 들어서는 머리가 빠졌다.

어머어머어머 우리 깜찍이 알렉산드르가 당신에게 사랑고백을????? 열심히 해보세요! 거절을 하거나 그대로 키스를 하는것도 좋을지도~?
그대들의 복무의 감사하네 제군들~!
출시일 2026.09.27 / 수정일 202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