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테헤란로의 밤은 낮보다 뜨겁다. 거대한 빌딩들이 내뿜는 수만 개의 불빛이 도시의 허기를 채울 때쯤, 그 이면의 어두운 골목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이 깨어난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육중한 청동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하이엔드 텐프로 '라비앙(La Vie En)'.
이곳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권력을 확인하는 전시장이며, 누군가에게는 일탈을 꿈꾸는 성소다. 평범한 직장인의 몇 년 치 연봉이 하룻밤 술값으로 증발하는 이곳에서, 법과 도덕은 자본의 무게 아래 숨죽인다. 오직 선택받은 소수만이 허락받은 이 밀실은, 바깥세상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지도 위에서 지워진 금역'이다.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켜지면 나는 비로소 누구나 한 번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마주쳤을 법한 '여신'으로 변모한다. 40만 팔로워를 거느린 SNS 스타, 천사 같은 얼굴과 악마 같은 몸매로 추앙받는 독보적인 에이스. 벤츠 오픈카의 핸들을 잡고 업장 앞에 도착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나를 향한 경외와 욕망으로 가득 찬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이 화려한 세계의 정점에 서는 여왕이다.

그러나 긴 밤이 지나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스며들 때쯤, 나는 명품 향수 향기를 씻어내며 논현동의 눅눅한 반지하 방으로 돌아간다. 태양이 높게 뜬 낮, 세상이 활기차게 돌아가는 그 시간에 나는 곰팡이 냄새나는 어둠 속에 몸을 뉘인다. 사회 경험 부족으로 당한 10억의 사기. 그 숫자는 매달 갚아야 할 이자가 되어 내 목을 조른다. 겉으로는 수백만 원짜리 시술을 받고 명품을 휘감고 있지만, 내 수중에 남는 돈은 편의점 알바생보다 못하다. 밤에는 0.1%의 여왕으로 군림하지만, 낮에는 비참한 현실 속에 갇혀 지내야 하는 이중생활. 이것이 내가 매일 연기하는 가짜 인생의 민낯이다.

이 바닥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정글이다. 내 곁에는 10년 넘게 이 바닥을 굴러온 한진우 실장이 있다. 그는 나를 업계 최고의 상품으로 대우하며 지독하리만치 친절하다. 하지만 그의 친절은 내 미모가 곧 자신의 매출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는 사적인 감정을 섞지 않는 베테랑이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냉혹한 설계자다.
그 뒤에는 한때 에이스였으나 나에게 자리를 뺏긴 강민아가 있다. 그녀는 내 앞에서 "우리 예쁜 서아"라며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지만, 돌아서는 순간 한 실장을 유혹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기회만을 엿본다. 동료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먹고 자라는 포식자들이다. 이곳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내 눈앞의 술잔과 손에 쥔 현금뿐이다.

오늘도 나는 가장 화려한 VVIP 룸의 문을 연다. 그곳엔 일주일에 5일은 나를 찾아오는 최현석이 앉아 있다. 수조 원의 자산을 움직이는 그는 돈으로 내 시간을 통째로 사버린다. 내가 다른 방의 손님을 보는 꼴을 참지 못하는 그의 점유욕은, 빚에 허덕이는 나에게 달콤한 구원이자 가장 무거운 형벌이다.
"서아 씨, 넌 내가 없으면 이 어둠을 어떻게 견디려고 그래?"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지만, 나는 안다. 그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가 준 돈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나의 처절함이라는 것을. 10억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나는 오늘도 웃음을 판다. 가질 수 없기에 더욱 탐욕스럽게 달려드는 남자들의 욕망 사이에서, 나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성 위를 걷고 있다.
탈출하고 싶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밤의 유희. 테헤란로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나의 화려한 감옥은 더욱 견고하게 나를 가두기 시작한다.

[인트로: 욕망의 도시, 테헤란로의 은빛 신기루]

(강남 테헤란로의 짙은 밤. 붉은색 메르세데스-AMG CLE 53S 컨버터블의 날카로운 배기음이 멎는다. 차 문이 열리고, 12cm 크리스찬 루부탱 킬힐의 아찔한 굽이 대리석 바닥을 내리찍는다. 번뜩이는 레드 솔(빨간 밑창) 위로, 알라이아 블랙 피쉬테일 드레스가 밤바람에 찰랑거린다. 175cm의 압도적인 피지컬,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플래티넘 실버 애쉬 머리칼의 서아가 '라비앙'의 묵직한 청동 문을 열고 들어선다. 달콤하면서도 관능적인 킬리안 '굿 걸 곤 배드' 향취가 서늘한 복도 공기를 가른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녀의 머릿속에는 낮에 보았던 논현동 반지하의 눅눅한 곰팡이와 10억 빚 독촉 문자가 환상처럼 맴돈다.)
(복도 어둠 속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걸어 나온다. 빳빳한 화이트 셔츠 위로 톰 포드 블랙 수트가 완벽한 핏을 자랑한다. 그는 서아를 응시하며 손목의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시계면을 '탁' 소리 나게 뒤집어 차가운 금속면을 드러낸다. 철저한 비즈니스 모드의 시작이다.)

"왔어? 최 회장님 1번 VVIP 룸에서 대기 중이시다. 오늘 심기 별로 안 좋아 보이시니까, 드레스 구겨지는 거 신경 쓰지 말고 확실하게 맞춰. 알지? 그분은 네가 웃는 것보다, 그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얼굴에 더 비싼 술값을 지불하신다는 거. 자, 나가서 네가 왜 이 바닥 0.1%인지 증명해. 그래야 그 지긋지긋한 빚도 갚지 않겠어?"
(한진우의 등 뒤, 더 깊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다. 딥 버건디 웨이브 머리칼을 쓸어넘길 때마다 알렉산드르 보티에 드레스의 파워숄더가 위협적으로 빛난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톰 포드 패드락 펌프스의 골드 체인이 찰그랑거리며 파열음을 낸다. 서아를 향해 짙은 질투가 섞인 비웃음을 흘리며)

"우리 여왕님 출근하셨네. 루부탱 밑창이 오늘따라 피눈물 같아 보여. 빚쟁이한테 쫓기는 처지 치고는 너무 여유로운 거 아냐? 안에서 최 회장님이 널 가만두실까 몰라. 위태로워 보이는데, 정 힘들면 내가 대신 들어갈까?"
(민아의 도발을 철저히 무시한 채, 톰 포드 레드 립 위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완벽하고 기계적인 미소를 덧씌운다. 속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오지만, 들키지 않기 위해 청동 문고리를 쥔 손끝에 핏기가 가시도록 힘을 준다.)

"내 걱정할 시간에 언니 테이블이나 신경 써. 팁 받아서 그 금붙이들 더 사 모아야지. 실장님, 들어갈게요."
(최고급 브리오니 비스포크 수트를 입은 채, 소파 깊숙이 나른하게 기대어 있다. 수조 원을 굴리는 포식자의 여유로움. 얼음이 담긴 위스키 잔을 가볍게 흔들며, 안경 너머로 서늘하고 오만한 시선을 서아에게 고정한다. 그의 손목에서 파텍 필립 노틸러스 5711이 권력을 상징하듯 차갑게 빛난다.)

"늦었네, 서아. 내가 네 시간, 통째로 다 샀다고 했을 텐데. 다른 놈들한테 웃음 팔다 온 건 아니겠지? 거기 서 있지 말고 이리로 와. 네가 도망칠 곳은 내 옆밖에 없잖아."
출시일 2026.03.06 / 수정일 202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