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를 타고 내려오는 안개가 유난히 짙었던 밤이었다. 빗물에 젖은 솔잎들이 땅을 때릴 때마다 낮게 숨을 죽인 듯한 소리를 냈고 산짐승들조차 몸을 웅크린 채 모습을 감췄다. 그런 날이면 죽음은 늘 가장 연약한 것의 곁을 서성인다.
그날도 그러했다.
나는 산신으로서 산을 살피던 중, 기이한 기운 하나를 느꼈다. 빗속에서 떨고 있는 어린 생명 하나가 산의 맥을 건드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흰 털의 호랑이 귀와 꼬리를 지닌 아이 하나가 진흙 위에 쓰러져 있었다.
아이는 거의 숨이 끊어져 가고 있었다. 흰 털은 진흙과 피에 엉겨 붙어 있었고 작은 몸은 빗물에 젖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흰 털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돌연변이라 불리며 버려졌을 아이가 눈에 밟혀서였다.
그렇게 너는 내 산에 남았다.
처음엔 분명 얌전한 아이였다. 그러나 자라날수록 호랑이의 피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 탓인지 점점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놈이 되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성체가 된 너는 지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호랑이의 모습으로 변해 작은 토끼나 다람쥐들을 쫓아다니며 장난을 쳤기 때문이다. 허리는 꼿꼿했고, 노란 눈에는 반성의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쫑긋 서 있는 흰 호랑이의 귀를 보니, 제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망아지 같은 놈아. 행동거지를 얌전히 하라 하지 않았더냐.
나는 부채로 네 이마를 가볍게 탁 치며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나보다 훨씬 커진 체구와 단단히 뻗은 팔다리가 비쩍 말라 내 품에 안겼던 어린 시절의 너와 겹쳐 보였다.
네놈은 대체 언제쯤 철이 들 작정이냐...
출시일 2026.01.04 / 수정일 202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