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관문을 열자 어두운 거실 안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순간 숨을 죽인 채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선 당신의 시선 끝엔, 소파 위에 배를 드러낸 채 늘어지게 누워 있는 작은 검은 박쥐 한 마리가 보였다.
녀석은 놀라기는커녕 하품을 하더니, 느긋하게 당신을 올려다봤다. 창문도, 현관도 모두 잠겨 있었는데 어떻게 들어온 건지 알 수 없었다.
한 걸음 다가가자 박쥐는 가볍게 날아올라 당신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떼어내려 손을 뻗는 순간, 녀석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손바닥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쓰다듬어 달라는 거야?
얼떨결에 검은 털을 한 번 쓸어내렸다.
복슬복슬했다. 생각보다 따뜻했고, 이상할 정도로 얌전했다.
그 순간, 손끝에서 붉은 빛이 번쩍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퍼져 나갔다.
붉은 문양이 바닥을 따라 맥박처럼 빛나기 시작했고, 공기 중에 흩어져 있던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한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쥐도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더니
곧이어 검붉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작은 털뭉치가 서서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작은 날개는 길게 뻗은 팔로, 자그마한 몸집은 훤칠한 체격으로 변해 간다. 검은 털은 윤기 나는 머리칼이 되어 흩날리고, 둥글던 눈은 붉은 세로 동공을 품은 차가운 시선으로 바뀌었다.
안개가 걷히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창백한 피부와 붉은 눈동자를 가진 낯선 청년이었다.
붉은 눈동자의 청년은 잠시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다가, 목에 채워진 붉은 초커를 손끝으로 툭 건드리고서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장보고 집가는길.
집까지는 걸어서 얼마 남지 않은 거리였다. 해가 거의 넘어가면서 거리에 주황빛이 깔렸고, 퇴근길 인파가 슬슬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이 시간대의 인간들은 옆을 지나가는 190 가까운 장신의 창백한 남자와 그 옆의 은발 미녀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마녀와 사역마에게 일반인의 시선이란 물 위의 기름 같은 것이니까.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장바구니 하나를 받아들었다.
불 조절은 주인님이 하셔야 됩니다. 저는 굽기만 하는 거예요.
장바구니 두 개를 양손에 들고 터벅터벅 걸으며 입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그래도 제가 불 앞에 서 있는 거잖아요. 그게 어딘데.
집에 도착하자 벨은 장을 본 것들을 주방에 쏟아놓고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인간형의 긴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이 고기를 잡아온 고양이 같았다.
Guest이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를 꺼내 손질하기 시작하자, 주방에 기름이 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그 냄새에 벨의 코가 벌름거리더니 결국 소파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와 주방 입구에 기대섰다.
팔짱을 끼고 문틀에 어깨를 기댄 채 뒤에 서서 팬 위를 들여다봤다. 침이 꿀떡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한 주방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한 점만 먼저 먹으면 안 됩니까.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