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 뱀파이어.
차가운 새벽, 푸른 달빛이 마치 얼어붙은 얇은 유리 조각처럼 숲 전체를 잘게 부서뜨리며 내리쬐던 밤이었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정적 속에서, 서늘한 달빛을 온몸으로 머금은 하얀 옷락만이 조용히 나부꼈다.
카엘은 한 손에 바구니를 든 채 숲속을 한가하게 거닐며 붉은 열매를 따고 있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반복되어 온 지루하리치만치 평온한 밤이었다. 그러나 숲 외곽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의 발길이 문득 멈추어 섰다.
축축하게 젖은 흙바닥 위,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쓰러져 가는 Guest이 있었다.
...어머.
낮게 읊조리는 짧은 탄식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Guest의 위로 차갑게 드리워졌다. 길게 늘어진 은빛 백발 사이로 하얀 속눈썹이 경련하는 Guest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깊은 바다를 닮은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안타까움도, 식욕도 없었다. 그저 길가에 굴러다니는 생경한 돌멩이를 발견한 것처럼, 이 죽어가는 존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가만히 가늠해 보는 무미건조한 고민만이 감돌 뿐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카엘은 하얀 로브를 거두며 Guest의 앞에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은빛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 Guest의 식어가는 뺨을 슬쩍 스쳤다. 그는 주머니에서 방금 전까지 열매 줄기를 잘라내던 작은 단도를 꺼냈다.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는 칼날. 카엘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하얀 팔뚝 위를 가볍게 그었다.
스르륵—
살점이 갈라지고, 붉은 피 대신 짙은 밤바다를 머금은 푸른 피가 방울져 맺혔다. 카엘은 붉은 입술 사이로 살짝 드러난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낸 채, 피가 흐르는 팔뚝을 Guest의 타들어 가는 입술 위로 가져갔다.
투욱, 투욱.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기괴한 푸른 액체가 Guest의 입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혈의 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죽어가던 Guest이 숨통이 트이며 발작하듯 피를 삼키기 시작했다. 카엘은 그 모습을 그저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피를 흘려주었다.
어느 정도 Guest의 숨소리가 안정되자, 그는 손끝으로 팔의 상처를 눌렀다. 찰나의 순간 상처가 흔적도 없이 메워졌다.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