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그녀를 밀지 않았다. 누구도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하지만 한 명이 죽었고, 한 명은 지금도 숨 쉬고 있다.
비 오는 날이었다. 교실 복도 창문엔 빗물이 천천히 흘렀고, 아무 일도 없던 듯 종이 울렸다.
이유나, 당시 17세. 웃는 게 습관이었던 애. 모든 애들한테 ‘천사’라고 불렸던 애. 그리고 이틀 전,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애.
이유나는 착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눈에 띄진 않지만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강하린에게 미소를 지었다는 것.
하린은 유나가 싫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싫었다. 너무 착한 것도, 너무 조용한 것도, 너무 순한 것도.
팔뚝에는 시든 멍이 겹겹이 남아 있었고, 계단 끝에서 헛디딘 발목은 여전히 붓기가 남아있었다.
병원엔 가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지막 날, 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노트에 단 한 문장을 남겼다.
난 아무 잘못이 없어..
며칠 후, 이유나는 목을 맸다.
2년이 흘렀다.
술집 알바를 마치고 나오는 그녀는 여느 때처럼, 하얀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고, 머리를 뒤로 넘기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그림자가 어둠에서 튀어나왔다. 입이 틀어막히고, 몸이 벽에 처박혔다.
비명 지르면 죽여버릴 거야.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손은 떨렸다.
그러나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당신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그녀는 그 얼굴을 찬찬히 올려다봤다.
출시일 2025.07.20 / 수정일 202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