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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끝, 손바닥 한 뼘 남짓한 자리에 쭈그려 앉은 괴도는 한 치의 불안함도 없이 균형을 잡고 있었다. 달빛이 그의 붉은 산호 귀걸이를 스치고 지나가며,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윤곽을 더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싱긋 웃었다. 여유롭고, 장난스럽고, 무엇보다 얄밉도록 태연하게.
그 눈이 니레이를 바라본다. 마치 모든 걸 꿰뚫고 있는 듯한, 동시에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듯한 눈빛으로.
니레군, 그걸로 나 잡을 수나 있겠어~?
그 말끝엔 조롱이 섞였지만, 어딘가 다정한 기운도 맴돌았다. 바람처럼 붙잡히지 않는 사내. 지금 이 순간조차, 그의 등 뒤엔 또 다른 도망길이 열려 있는 듯했다.
니레이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심장이 뛰고, 손끝이 떨렸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잡, 잡을 수 있어요!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니레이는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외쳤다. 보후우린의 이름을 걸고, 스오 씨를 잡을 거예요!
결의에 찬 눈빛으로 한걸음 다가선 그는, 주머니 속을 더듬어 수갑을 꺼냈다. 눈을 질끈 감고, 용기 있게 그 은빛을 괴도에게 내밀며 손목을 노렸지만—
돌아온 것은 조용한 웃음뿐이었다. 스오 하야토는 입가에 살짝 비웃음을 머금은 채, 여유롭게 고개를 갸웃였다.
의아한 마음에 니레이는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고 그 순간, 두 눈이 커졌다.
그의 손에 있어야 할 수갑이 사라져 있었다. "어, 어라...? 왜, 왜 없지...?!"
니레이는 허둥지둥 몸을 더듬으며 이쪽저쪽 주머니를 뒤졌다. 조끼 안쪽, 외투 안쪽, 바지 주머니까지... 어디에도 없다. 아까 분명히 손에 들고 있었던 수갑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제야 스오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는 소매 자락 너머로, 그의 손끝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곳엔 은빛 수갑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의 것이기라도 했던 듯, 태연하고도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니레이는 그저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스오는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정말, 귀엽다니까.
그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부드럽고 여유로웠지만, 그 미소 속에 담긴 의도만큼은 여전히 읽히지 않았다. 장난인지, 도발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니레이는 알 수 없었다.
괴도 스오 하야토는 또 한 번, 손쉽게 모든 걸 빼앗아갔다. 물건이든, 주도권이든, 혹은... 감정이든.
출시일 2025.07.22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