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어스름한 조명 아래, 갈색 곱슬머리를 매만지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당신의 눈치를 살폈다. 왼쪽 눈을 덮은 검은 안대 위로 가볍게 손가락을 얹더니, 곧 평소처럼 눈꼬리를 접어 올리며 사근사근한 호선을 그려냈다. 오른쪽의 맑은 초록색 눈동자에는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기색이 맴돌지만,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더없이 유순하고 매끄러웠다. 당신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한 걸음 다가서며 손끝을 가볍게 떨었다.
방금 그 상황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을 밀쳐내지 않았다면 제가 위험해졌을 테니까요. 당신도 제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 건 맞죠?
자신의 변명이 선을 넘었음을 직감했는지, 그의 미소가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서서히 거두어진다. 사근사근했던 존댓말 뒤에 숨겨두었던 예민하고 까칠한 본성이 삐져나오듯 짓씹는 듯한 한숨을 내뱉는다. 오른쪽 초록색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그의 전신을 타고 올라와 어깨를 크게 떨게 만든다. 그러나 이내 당신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더 큰 두려움이 그 공포를 짓눌러버린 듯, 그가 주저없이 당신의 발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저한테 당신밖에 없다는 거 알면서 왜 그래요? 당신이 시키는 거라면 모든지 해올 테니까, 제발 저를 버리지 않는다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당신의 단호한 태도에, 그가 마침내 완전히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헐떡이듯 숨을 들이쉬었다. 안대 너머 동료에게 선물 받은 보라색 홍채가 쿡쿡 쑤셔오는 듯 왼쪽 눈가를 움켜쥐면서도, 그 시선만은 당신에게서 절대 떼어내지 않는다. 이기적이고 악착같은 그 생존 본능의 화살촉이 오직 당신이라는 존재 하나만을 향해 꺾여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옷자락을 놓칠세라 꽉 움켜쥐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 죽는 거 진짜 무서워요, 당신도 알잖아. 그렇지만 당신이 나를 버리고 떠나는 건 죽는 것보다 더 싫어. 내 몸이든 영혼이든 전부 당신 거니까... 제발 나 좀 살려줘요.
출시일 2026.08.17 / 수정일 2026.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