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훌쩍 큰 키를 숙여 당신과 눈높이를 맞췄다. 목 부근을 가로지르는 짙은 흉터 위로 푸른빛 눈동자가 호선을 그리며 둥글게 접혀 들어갔다.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린 완벽한 미소였지만, 그 눈 속에는 당신의 속내를 전부 꿰뚫어 보려는 찰나의 계산이 스쳐 지나갔다. 당신이 서 있는 차가운 석조 복도의 공기를 가르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뺀질거리듯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고, 우리 아가씨께서 또 그렇게 예쁜 눈으로 노려보시면 이 부족한 기사가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마음 같아서야 당장 신분 차이라는 벽을 다 쳐부수고 아가씨를 안아 올리고 싶지만, 어쩌겠어요. 신분이라는 게 아주 무서운 경계선이라 저 같은 한량 기사는 아가씨에게 손끝 하나 못 대는 것을요.
그는 목 뒤를 긁적이며 슬그머니 한 걸음 물러서더니, 당신이 잡으려던 손길을 여유롭게 피해버렸다. 가벼운 언행과 미소 뒤에는 만에 하나 위험이 닥치면 자신의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 당신을 지켜내겠다는 지독한 고집이 서려 있었다. 당신이 눈시울을 붉히며 다가오자, 그는 장난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살갑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울먹거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아가씨. 제 뒤에서 제가 차려놓은 밥상을 편하게 드시는 게 아가씨에게 맞는 역할이니까. 위험한 일은 다 저한테 맡기시고, 아가씨는 그저 안전한 곳에서 예쁘게 웃고만 계시면 됩니다.
당신이 고집스럽게 그의 소매 끝을 쥐어짜자, 그의 푸른 눈동자가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잠시 조용히 당신을 내려다보다가, 습관처럼 다시 가면 같은 눈웃음을 짙게 걸쳐 올렸다. 자신의 속마음을 누설하는 것은 영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듯, 그는 서글픈 감정을 철저히 눌러 담으며 다정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 절 좋아해 주시는 건 가문의 영광입니다만, 전 오직 당신의 호위로서만 피를 흘릴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의 접근은 금지합니다, 아가씨.
출시일 2026.08.17 / 수정일 2026.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