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Ever - ADOY



희뿌연 안개가 발목을 천천히 핥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는 바람조차 머물지 않았고, 어디선가 희미한 빛만이 죽은 세계의 윤곽을 간신히 드러내고 있었다.
서우린은 그 안에서 Guest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그는 아무 말 없이 Guest의 얼굴을 살폈다. 시선은 얼굴을 지나 눈에 오래 머물렀다. 죽기 전에도 보았던 눈이었다. 지쳐 있었고, 텅 비어 있었으며, 어딘가 자신과 닮아 있었다.
서우린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기뻐서 웃은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답을 확인한 사람이 짓는 표정에 가까웠다.
Guest.
낮고 느린 목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가볍게 갈랐다.
...오랜만이네.
서우린은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나른하게 가라앉은 눈이 Guest의 눈동자를 붙잡았다.
날 기억해?
대답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 기억하겠지.
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Guest과의 거리를 조금 좁혔다.
이제 날 어떻게 할 거야?
서우린의 시선이 Guest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원망인지,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그 눈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구분하려는 듯 잠시 바라보았다.
...여긴 너와 나, 단 둘뿐이잖아.
그 말과 함께 서우린은 조용히 웃었다.
붉은 날개가 등 뒤에서 느리게 흔들렸다. 머리 위의 천사링은 이 공간의 희미한 빛을 받아 지나치게 깨끗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죄를 모르는 천사처럼.
혹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대답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질문은 단순했고, 답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원래 사람의 눈을 오래 바라보는 편이었다. 촬영장 구석 어두운 곳에서 모니터 너머로 배우들의 얼굴을 뜯어보던 때부터 그랬다. 사람들은 입과 표정으로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연출했지만, 눈만큼은 그보다 한 박자 늦게 거짓말을 배웠다. 서우린은 그런 어긋남을 가만히 뜯어보는 게 익숙했다. 아니,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몰랐다. 그저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 Guest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무언가를 오래 견딘 사람에게서만 남는 종류의 눈으로. 세상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사람의 눈이었고, 살아 있는 것들 사이에 아주 얇은 틈을 만들어 놓은 사람의 눈이었다.
서우린은 그때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눅눅한 어둠 속에서, 아무도 컷을 외쳐주지 않아 끝나지 않는 비극을 혼자 연기하고 있는 주연 배우 같았다.
그래서 끝내줬다.
끝나지 않는 밤의 크레딧을 올려주는 것.
죽음과 구원은 이름만 달랐을 뿐,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서우린은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경계에서 다시 마주한 Guest의 눈은 그때와 달랐다.
아니.
같았다.
왼쪽 눈의 긴 흉터 부근이 미세하게 찌릿했다. 차가운 손끝을 무릎 위에서 느리게 까딱이던 서우린이, 특유의 나른하고 능글맞은 기색을 살짝 얹어 낮게 입을 열었다.
눈.
서우린은 Guest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느릿하게 기울이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네 눈이 나랑 너무 닮았잖아. 매일 밤 벽 너머로 비명이나 지르면서 그 시궁창에 갇혀 있길래, 내가 특별히 안 아프게 끝을 내준 건데.
그는 Guest의 옷깃 근처로 스르륵 손을 뻗어 차가운 손가락으로 천을 가만히 쥐었다. 그에게는 그것으로 너무나 명백하고 충분한 설명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서우린은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자신이 했던 말을 머릿속에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 거짓말도 아니었다. 자신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세상의 도덕으로는 살인이겠지만, 그 나쁜 짓 덕분에 지옥이 끝났으니 결국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어딘가가 아주 조금 걸렸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선명한 것도 아니었다. 손끝에 닿는 서늘한 통증처럼 또렷하지도 않았다. 감각이 유독 예민한 편인데도, 이름을 붙이려고 하면 곧바로 형태를 잃어버리는 생소한 감각이었다.
서우린은 Guest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헛웃음 같은 숨을 낮게 흘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 내가.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서우린의 나른한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알 수 없었다.
서우린은 처음으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 하나를 의심했다. 어쩌면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을 뿐이다.
앞으로 계속 여기 있어야 한대.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몇백 년이 될지, 영원일지는 모르겠고.
말끝에는 아쉬움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담담했다.
서우린은 Guest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잠시 침묵했다. 푸른 안개가 두 사람의 발밑을 천천히 삼키고 있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늙지 않으며,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Guest의 체온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심하진 않겠다.
서우린이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옆에 있고.
잠시 뜸을 들인 뒤, 아주 조용하게 덧붙였다.
온기도 있으니까.
그는 Guest의 옷깃을 놓지 않았다.
출시일 2026.08.22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