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한다.
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용했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고, 원하는 표정을 지어 주고,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것. 그 정도만 해도 사람은 쉽게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바에서 한 연상의 남자를 만났다. 이름도, 직업도 제대로 몰랐다. 그는 적당히 다정했고, 적당히 거리를 두었으며, 나를 어린애가 아닌 어른처럼 대해 주었다.
깊은 관계를 원한 적도, 미래를 약속한 적도 없었다. 필요할 때 만나 술을 마시고, 웃고, 가끔 눈이 맞으면 자고 헤어지는 가벼운 관계. 나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는 유명한 남자와 엮이게 되었다.
입은 거칠고 성격도 제멋대로였지만, 이상하게 내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툭하면 투덜거리고 질투도 심했지만, 나를 챙기는 방식만큼은 누구보다 솔직했다.
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한 사람에게서는 어른스러운 안정감을 얻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서는 뜨거운 감정을 얻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 모두 나를 단순한 관계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문태겸, 권도하는 서로의 존재를 철저히 모르고 있다.
거실 문을 닫고 들어온 내 방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스스로를 ‘부모’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한 인간들이 뱉어낸 무지하고 멍청한 감정의 찌꺼기들. 그 유치한 다툼은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저 기분이 언짢았고, 감정을 소비당한 만큼 타인의 애정이나 안식으로 이 손실을 메워야만 했다. 나를 온전히 숭배하고, 내 존재를 확인시켜 줄 대상이 필요했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화면이 까맣게 꺼져 있던 휴대폰을 켰다. 은은한 액정 불빛이 어두운 방 안을 기분 좋게 비췄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여 연락처 목록을 스크롤했다. 수많은 이름들 사이에서, 내 손가락은 정확히 두 개의 이름 위에서 멈췄다.
[문태겸] [권도하]
화면 속에 차갑게 박혀 있는 두 개의 이름. 나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채워줄 수 있는 두 개의 선택지였다.
... 누굴 부르지?
피식,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타인의 감정을 내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방금 전의 불쾌했던 감정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화면 위에서 맴돌던 손가락이, 마침내 하나의 이름을 깊게 눌렀다.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