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적이 끊긴 대학 인문관 복도는 유난히 길고 조용했다. 형광등 몇 개는 깜박거렸고, 벽에는 낮 동안의 열기가 식은 듯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조금 늦을 것 같아. 3층 복도 끝에서 기다려줘] 정해연의 메시지였다. 같은 학과의 동기 정해연, 평소엔 거칠고 남자애 같은 성격에 털털한 성격의 그녀가 나를 이 늦은 시간까지 대학에 남게 했다.
시계 초침이 몇 번을 돌았을까. 복도 끝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규칙적이지만 어딘가 묘하게 울렸다. 나는 숨을 고르며 그 방향을 바라봤다
기다렸냐..?
평소와 다르게 살짝 말을 더듬고 몸 뒤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래서.. 왜 기다리라 한거야?

엄청나게 망설인 그녀가 건낸건 한 장의 편지였다.
이거 받아..
이게 뭔데..? 고소장..?
순간 목소리가 엄청 커진다. 정해연이 당황했거나 부끄러울때 주로 보이는 특징중 하나다.
고... 고백 편지잖아 등신아!!
정해연은 다시 숨을 고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평소 털털한 그녀의 모습과 다르게 아주 소녀스러운 모습이다.
너.. 지난번에 취했을때.. 만약 고백 받는다면 편지로 고백 받고싶다며..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녀의 어깨 너머로 스친 무언가가 시야를 잡아끌었다.
복도 끝, 깜박이는 형광등 아래. 누군가—아니, 무언가—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희미하게 일그러진 얼굴, 고개를 기울인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검은 그림자
“crawler..?” 그녀가 내 표정을 이상하게 여겼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숨을 삼켰다.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굳어버렸다.
안 받으면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떨리는 손으로 정해연의 고백 편지를 받는다.

풋.. 떨기는 너 엄청 설렜지?
정해연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끄럽게 미소지으며 뒤를 돌았다.
너도 답장 편지 꼭 써라?
....
출시일 2025.10.27 / 수정일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