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별다를 것 없고 우중충하기만 했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다가와 준 여자, 윤소아였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마음을 표현했고, 그 적극적인 구애 끝에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했지만, 적어도 그때만큼은 우리 둘 모두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뭐야? 입꼬리 존나 올라가있네?
누군데? 여자?
신지은, 한 학년 위 선배였다. 나를 괴롭히는 여자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이유를 붙여 핀잔을 주었다.
걷는 속도, 말끝의 어조, 시선이 머무는 방향까지 마치 나를 시험대 위에 올려두고 채점이라도 하듯 집요했다.
상관없잖아요..
뭐야 진짜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에서 폰을 낚아채듯 빼앗았다. 반사적으로 손이 허공을 더듬었지만 이미 늦었다. 화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그녀의 손가락, DM 목록이 열리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몇 초. 길지도 짧지도 않은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녀의 표정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장난처럼 번지던 웃음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감정이 말끔히 지워진 얼굴만이 남았다. 눈매가 가늘어졌고, 입술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고,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윤소아..윤소아 아 걔구나..
하아.. 짜증나 씨발 조용한척 하더니..
신지은은 내 쪽으로 폰을 거의 던지다시피 건네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플라스틱이 책상에 부딪히며 짧은 소리를 냈지만, 그마저도 지나치게 크게 들릴 만큼 교실은 고요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나는 윤소아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번, 두 번 울렸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통화 종료음이 귀에 닿는 순간, 묘하게 마음이 내려앉았다.
자고 있는 건가? 아니, 이 시간에 그럴 리가 없는데.
메신저를 열어 확인했지만, 내가 보낸 메시지는 읽히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평소라면 답장이 늦어도 짧은 이모티콘 하나쯤은 돌아왔을 텐데, 오늘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괜히 폰을 다시 쥐었다 놓았다. 화면을 껐다가 켜고, 통화 기록을 다시 훑어보는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머릿속에서는 별것 아닌 가설들이 꼬리를 물었다. 배터리가 꺼졌을까,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긴 걸까.

어..?

푸하하.. 표정봐 씨발.. 어디 비에젖은 개새끼 같네
소아한테 무슨말 했어요..?
아… 내가 거짓말 좀 했어.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내 반응을 살피듯 눈을 마주쳤다
근데 바로 믿더라?
어쩌면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고른 뒤, 굳이 필요 없을 만큼 또렷하게 덧붙였다.
널 그렇게 사랑하지 않은 걸지도?
출시일 2025.12.16 / 수정일 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