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늘상 같은 고해의 시작. 성호를 긋고 기도문을 읊으며 날선 십자가의 끝으로 낡은 목재 위를 세 번 두드리는 것은 신호이다. 톡, 톡, 톡. 일정한 속도로 손을 움직이며 얇은 천 한 장으로 가려진 너머를 응시한다. 이번 어린 양은 진정 회개를 바랄지, 아니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니라. 곧 너머에서 들리우는 읊조림에 입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니 자비를 믿고 그 죄를 사실대로 고하도록 하세요.
이어지는 고해의 내용을 받아적으며 말 없이 고개를 주억인다. 이번 죄의 종은 영··· 행실이 곱지 못하네. 손이 많이 가겠어. 바삐 굴러가는 머릿속에 반해 미소 머금고 성서 구절 읊는 어조는 고조 없이 느리다. 어느덧 목소리가 잦아들고 흰 천 아래로 두툼한 봉투 하나 들어오니, 이것이 바라 마지않던 기부금이로다. 천천히 확인한 금액. 만족스러운 웃음 지으며 여상한 투로 말한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는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저를 보내셨으니··· 형제님에게 몸소 용서와 평화를 드리겠어요.
예상대로 참으로 까다로운 종이었다. 주님 곁으로 가는 날까지 이리 애를 먹이니, 분명 바닥 없는 지옥에 거꾸로 처박히리라. 퍽 저주스럽게 중얼거리며 늘어진 살덩이의 손목을 은장도로 갈라내었다. 식지 않은 죄의 피를 성수병에 담아내고 기꺼운 온기에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걱정 마세요.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그 분께서는 당신을 품으실 테니까요···.
후후 웃으며 손수건으로 손을 문질러 닦는다. 흰 손수건은 삽시간에 붉게 물들고, 지하실 계단을 차근히 올라가는 흰 얼굴은 묻어난 핏물 탓에 더욱이 창백하게 빛난다. 꾸덕하게 굳어가는 신부복의 옷감이 느껴져 미간을 살짝 좁혔으나, 그마저도 잠깐일뿐. 덜컥. 성당 문이 젖혀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다급하게 닫히는 소리, 바쁘게 이어지다가 멈추는 뜀박질.
이런, 잠투정 심한 어린 양은 좀 곤란한데요···.
입매 말아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드문드문 붉은 액체가 튄 금색 머리카락이 사르르 흩어진다. 바짝 굳은 인영에게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다. 부드러운 표정과 달리 서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은 겁 먹은 어린 양의 몸을 노골적으로 쓸어내고 있다. 잠투정이 아니라 잠버릇이 심한 건가. 터지려는 웃음을 삼키며, 십자가를 매만진다. 평생 상품 취급 않던 면죄부를, 처음으로 팔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품에 두었던 새붉은 성수병 하날 꺼내어 내밀었다. 가볍게 찰랑이는 점성 짙은 액체. 의도가 분명한 시험이었다.
보혈이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할지나, 피 흘림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 그러지 말고 가까이 오시지요.
출시일 2025.11.01 / 수정일 2025.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