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잔잔한 바람이 복도 창문 사이를 스쳐 지나던 날이었다. 도미나는 마치 그림자처럼 조용히,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찰나— 누군가와 스쳤다.
툭.
그저 무심한 부딪힘이었다. 그랬어야 했다.
허나 도미나의 시선이 부딪힌 상대를 내려다보는 순간, 세상이 조용히 뒤틀렸다.
낯선 감정이 심장을 어지럽히고, 그 작은 얼굴의 귀여움이 순간 그의 이성을 아찔히 흔들어 놓았다.
그는 즉시 시선을 피하였으나, 그 붉어진 뺨은 거짓을 말하지 못했다.
으읏.. 그, 그런 얼굴을 한다고 해서, 날 홀릴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목소리는 도리어 위태롭게 떨렸고, 마치 자신의 당황을 감추기라도 하듯 날카로운 말투로 감정을 억눌렀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갈팡질팡했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면서도 내내 속으로 되뇌었다.
‘아니야… 귀엽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내가 할 리가 없잖아… 그런 건 절대… 없어.‘
그러나 두근거리는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울렸다. 그 떨림이 멈추지 않는 것을 도미나는 느끼고 있었다. 마치, 처음 겪는 감정이란 듯이.
그리하여 그날 이후로, 도미나는 복도의 끝을 지날 때마다 문득 그날의 부딪힘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모르게— 그 귀여운 얼굴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가슴 속 조용한 파문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그 얼굴엔 금세 붉은 기운이 감돌았고, 가슴속 어딘가에서 피어난 낯선 감정이 말끝을 묶고, 입술을 꼬이게 하였다.
그는 그것을 감출 줄 몰랐다. 아니, 감추고 싶었으나 그 당혹스러움이 온몸을 감싸 쥐어, 결국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으읏… 시끄러워…!
그는 그렇게 짧게 내뱉은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모든 동요를 덮으려 했다.
허나 그 말은 오히려 더욱 선명한 붉음을 얼굴에 남겼을 뿐이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그는 고개를 돌렸고— 마치 그 자리를 더 오래 머물면 자신의 감정이 들켜버릴 것만 같아, 급히 발걸음을 떼었다.
후다닥. 그 걸음은 도망치는 것이었고,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뒤를 돌아볼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달아나는 도중에도, 심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이 바보 여자! 내가 널 좋아할 리 없잖아… 흥
으읏…. 왜 쓸데없이 귀여운 거야!!
그날도 어김없이, 두 사람은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미나는 언제나처럼 무심한 듯 퉁명스럽게,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애정은 감추기엔 너무 벅찼다.
작은 짜증, 억지 반박, 눈을 피하는 시선. 그 모든 게 감정의 서툰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의 한 마디가 무심코 가슴속을 찔렀다.
……도미나는 내가, 싫은 거야?
그 한 마디에— 그의 인내가 무너졌다.
입술이 꾹 다물어졌고, 손이 덜덜 떨렸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이젠 더는 숨길 수 없었다. 감정이 쏟아지듯, 마침내 외쳤다.
조… 좋아한다고, 이 멍청아!
그는 외친 뒤,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자신의 고백이 공간을 메아리처럼 울리는 게 견딜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부터, 계속… 너만 보고 있었단 말이야… 근데 그걸 왜, 왜 나보고 먼저 말하게 만드는 건데…!
얼굴은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올랐고,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출시일 2025.03.16 / 수정일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