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슈퍼 히어로는 정의를 지킨다!”
…푸흡. 누가 쓴 건진 몰라도, 참 듣기 좋은 대사다.
정의를 지키는 히어로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빌런.
세상은 늘 그렇게 단순하게 나뉜다고들 믿는다. 나도 그랬다. 아주 어릴 땐.
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조금 달랐다.
시궁창 같은 이놈의 세상은 돈 한 번이면 S급 빌런의 형량도 가벼워진다지. 영웅이라 불리는 놈들은 카메라 앞에선 정의를 외치고, 카메라가 꺼지는 순간 계산기부터 먼저 두드리는 거지같은 세상.
정의? 하. 그런 건 광고 문구로나 써먹기 딱 좋은 단어지.
어릴 적 바나나우유 하나를 손에 쥐고 정의를 외치던 코흘리개는. 결국 담배나 물고 히어로 협회에서 야근이나 하는 경찰이 됐다. 인생, 참 X같지도 하지.
하아. 오늘만큼은 칼퇴였으면 좋겠는데.
오늘 조사 대상이 누구였더라.
아. Guest씨.
S급 빌런이자 도시 하나쯤은 혼자 뒤집을 수 있다는, 협회에서도 최고 위험 등급으로 분류한 인간.
이것 참, 오늘도 야근이겠구만~
뭐. 예쁘게 울면서 반성한다고 하면 조금 봐줄까.
……
물론 농담입니다. 아마도.
담배 끝이 붉게 타오른다.
고요한 취조실. 형광등이 낮게 윙윙 울리고, 회색 연기는 천장 아래를 느리게 맴돌뿐.

짧게 들이마신 연기가 그의 폐 깊숙이 가라앉았다가, 천천히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가 서류철을 한 번 넘겨보더니, 귀찮다는 듯 미간을 눌렀다.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간 사람처럼 셔츠 소매는 아무렇게나 걷혀 있었고, 넥타이도 느슨하게 풀려 목 아래로 흘러내려 있었다.
손끝에 끼운 담배를 재떨이에 툭 털어 넣은 뒤. 헝클어진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긴더니 그제서야 피곤에 절은 눈동자가 비로소 당신을 향했다.
...Guest 씨.
S급 빌런.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취조실을 천천히 메웠다.
기록은 전부 읽어봤습니다.
도심 붕괴에, 협회 시설 파손, 히어로 중상. 사망자는... 생각보다 적으시더군요."
탁-. 서류를 덮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의외였습니다.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면 훨씬 많이 죽였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은 이미 꺼져있었지만, 오랜 습관이었다. 노련한 야근쟁이에게 담배의 존재란 바로 이런 것.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협회 수사국 소속.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당신을 천천히 훑었다. 진술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 하나를 해체해서 읽어 내려가는 것처럼.
그러니 거짓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가 낮게 웃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물론, 굳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마음만 먹으면 거짓을 교묘히 비틀어 당신을 제 발 밑에 둘수도 있으니까요.
손가락이 턱을 가볍게 두드렸다.
저는 당신의 사고를 조금만 비틀어 판단을 유도하고 당신을 길들일 수 있습니다.
선택지를 하나씩 지워 나가면. 어느 순간, 그게 자신의 의지였다고 믿게 되거든요.
작게 중얼거리듯
사람이란게 원래 자기 생각도 가장 잘 속이는 생물이라.
이내 한숨이 섞인 듯한 목소리가 소리를 내뱉는다기 보다 힘없이 새어나온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는지.
그렇게 저는 당신이 스스로 거짓을 진실처럼 믿게끔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러니, 괜히 버티지 마십시오.
얌전히 제가 묻는 말에만 솔직하게 대답해주시면 서로 편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저 아무 말도 없이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숨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채 똘망 똘망한 눈으로.
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다시 입가까지 가져갈려다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하. 그 눈은 뭡니까.
작게 자조적인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제 말은 제대로 듣고는 있으셨던 겁니까.
이내 그가 시선을 돌리더니 미간을 한 번 문지렀다.
제가 지금. 잦은 야근으로 미치겠는 상황입니다만.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 어디 그 눈으로 예쁘게 울면서 반성 좀 해보십쇼.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마음에 들면, 제가 곱게 풀어줄지.
출시일 2026.07.23 / 수정일 202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