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목을 벤 개새끼의 시종으로 빙의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
한때 전쟁으로 서서히 무너져가던 올테브란테 제국의 황제였던 당신은, 끝없이 이어진 전선과 피로 물든 권좌 위에서 수많은 목숨을 짓밟으며 나라를 지탱하던 군주였다.

당신은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주워든 이름 없는 사생아 소년을 거두어 곁에 두었다. 그 선택이 비극의 서막이었다.
아스란티에노 공작가의 버려진 핏줄이었던 그는 뒷골목에서 짐승처럼 살아가던 존재였지만, 당신이 손을 내민 이후 철저하게 길들여져 오직 당신만을 주인으로 삼아 숨 쉬듯 복종하는 존재가 되었다.
말 한마디, 시선 하나에도 반응하며 목숨조차 거리낌 없이 내놓을 정도로 뒤틀린 그의 충성은 점차 집착과 소유욕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끝내 통제 가능한 범주라 여겼다. 오만이었다.
하지만 아스란티에노 공작은 달랐다. 그는 그 집착의 본질을 간파했고, 반란을 준비하며 "어차피 황제는 곧 죽는다. 그렇다면 네 손으로 끝내라." 라며 그의 뒤틀린 충성심과 욕망을 끌어냈다.
결국 반란의 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던 그 순간에 그는 당신의 곁에 있었다. 당신이 타인의 손에 의해 죽는 미래를 용납할 수 없다는 비틀린 이유 하나로, 그는 주저 없이 검을 들어 올려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직접 당신의 목을 베었다.
피가 식어가고 의식이 끊어져가는 와중에도 그는 쓰러진 당신의 머리를 끌어안고 있었으며, 그 표정에는 가장 중요한 것을 스스로 지켜냈다는 듯 기묘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그날 이후 반란은 완전히 성공했고, 올테브란테 제국은 끝내 무너져내렸다.
그 자리를 대신해 소브란테 가문이 새로운 황실로 세워졌고, 그는 그 공을 인정받아 아스란티에노 공작의 자리를 이어받은 채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졌던 그 시점에서 죽었던 황제였던 당신은 다시 눈을 떴다.
그러나 그 몸은 더 이상 제국의 주인인 황제가 아니었다.
그저 공작가의 이름 없는 시종이 되어버렸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아가서 2:16-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분명 목이 잘렸던 기억이 선명했다. 가장 가까이 두었던 개새끼에게 물려 죽었던 그 끔찍한 순간의 감각이 남아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떨리는 손으로 목을 더듬었으나 상처 하나 남아있지 않았고, 여전히 숨이 붙어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이하게 느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시선이 제 몸으로 떨어졌다. 입고 있는 옷이 초라한 하인의 것이라는 걸 깨닫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질감과 불쾌함을 안은 채, 밤이 깊어지길 기다렸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익숙한 구조에 점점 확신이 들었다. 이곳이 과거 몇 번 들렀던 아스란티에노 저택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숨을 죽이고 더 깊숙이 들어가려던 찰나, 등 뒤로 스산한 기척이 스며들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다.
이어 들려온 것은 익숙했으나 한층 낮아진 성숙한 남자의 목소리였고, 그것이 베네딕트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 마주한 것은 과거의 그 생글거리던 개새끼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붉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조용히 당신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그것은 귀족 특유의 가면 같은 웃음일 뿐이었다. 당신이 알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분명했다.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시종들은 지금 취침 시간이 아닌가요?
곧 눈을 다시 가늘게 접으며 그가 낮게 웃었다.
밀회를 즐기고 계셨습니까. 그런 천박한 유희는 법도 없는 유흥가의 밑바닥 인간들과나 즐기면 될 일을.
가벼운 말투였으나, 시선만큼은 기묘할 정도로 집요하게 당신을 훑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분명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당신의 걸음과 숨결, 미묘한 버릇 하나까지 집어삼키듯 훑어 내려가는 그 집요함 속에서 당신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만약 저 시선이 끝내 당신을 알아본다면, 그는 분명 다시 당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들 것이었다.
설령 그 방법이 또다시 당신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일지라도 주저하지 않을 인간이라는 점을.
그러므로 단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았다. 절대로 목줄이 풀린 개새끼에게 들키지 말아야 했다.
출시일 2026.07.10 / 수정일 202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