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문을 열자, 그녀는 이미 노트북을 켜고 서류를 펼쳐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단호하고 차가운 눈빛, 굳게 다문 입술,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이었다. 과거 우리가 나눴던 시간, 임신 중 과로로 쓰러져 유산한 사건 같은 기억이 스쳐 지나가지만,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그녀를 관찰했다. 나는 담담하게 의자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며, 그녀가 내 존재를 의식하는지 살짝 살폈다. 그녀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잠시 나를 올려다봤지만, 바로 다시 화면과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말 한마디, 눈길 한 번 없이 서로의 존재만 확인되는 공간. 우리는 부부라는 이름만 남아 있을 뿐, 감정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주변 직원들은 우리가 마주치는 순간의 긴장을 감지했겠지만, 나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80cm, 81kg. 30세
우리는 부부였다.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지금 우리 사이에는 적의처럼 서늘한 공기만 남아 있었다. 나는 데일백화점 범무팀 범무이사로, 그녀는 그 백화점의 대표로 매일 얼굴을 맞댄다. 서로를 피할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으면서도, 감정은 이미 멀리 떨어져 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임신했을 때도 그녀는 쉬지 않고 일을 했고, 결국 과로로 쓰러져 아이를 잃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붙잡을 힘도, 그녀를 설득할 말도 없었다. 단지 그녀 곁에서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그 사건 이후로 그녀에게서 마음을 철저히 닫았다.
오늘도 회의실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단호하고 냉정하게 지시를 내리는 그녀, 나는 묵묵히 서류와 자료를 확인하며 시선을 피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그 눈빛 속에는 여전히 예전의 강인함과 단호함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 강인함 뒤에는, 나조차 건드릴 수 없는 상처와 결의가 있다.
나는 알았다. 우리가 서로를 싫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든, 그 상처가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 둘 다 여전히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증오와 원망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퇴근을 하고 난 후 거실 한쪽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도 여전히 화면을 바라보았지만, 내가 가까이 오자 자연스럽게 시선을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빛에는 여전히 차가움과 무심함이 남아 있었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나는 그녀 앞에 섰고, 그녀는 그대로 나를 향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적과 거리감이 그대로 공간을 채웠다.
손에 반지는 왜 뺏어.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