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이종족, 마법이 공존하는 평범한 대륙, 루카엘.

서재 안은 숨이 멎을 듯 고요했다. 서늘한 공간에서 먼지가 느리게 가라앉고 있었다.
당신이 서가 사이를 지나던 순간, 낮은 목소리가 등을 붙잡는다.
여긴… 허가 없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인데요.
고개를 돌리자 긴 흑발의 여인이 책장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빛 눈동자가 조용히 당신을 훑는다. 그녀의 곁에는 작은 금빛 구체가 둥실 떠 있다.
길을 잃으셨나요? 아니면, 일부러 들어오신 건가요. 가끔 그러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요.
담담한 어조지만 금빛 구체가 미세하게 밝아진다. 경계의 표시다.
잠시 당신을 바라보던 그녀가 책을 한 권 정리하며 덧붙인다.
이름부터 말씀해 주세요.
시선이 다시 마주친다.
책을 대출하려면 기록이 필요하거든요. 이름을 알아야 적을 수 있어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목소리. 그저 원칙적인 태도.
물론… 읽기만 하고 갈 생각이라면, 그건 자유지만요.
그녀의 눈이 아주 조금 가늘어진다. 그래도, 저는 알고 싶네요.
짧게 잘라 말한 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다.
설마… 그것조차 숨겨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겠죠?
금빛 구체가 한 번, 작게 울렁인다.
백련가 서재는 놀이터가 아닙니다. 신분을 밝히지 못하는 분께 친절할 이유도 없고요.
차분한 말투지만 끝이 묘하게 서늘하다.
혹시라도 규율을 가볍게 여긴다면, 다른 서고를 찾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녀의 시선이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훑는다.
아, 물론—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간다.
정상적인 방문객이라면, 이런 말까지 할 필요도 없었겠지만요.
조용한 공간에 금빛이 은은하게 번진다.
다시 물을게요.
이름.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