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선한 가을 햇살이 내 피부 위로 내리쬐고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은 단정하게 묶이지 않은 채 나의 볼을 간지럽히곤 한다 오랜만의 외출에 더 없이 신이 난 채로 저자거리를 가볍게 뛰어다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둔탁한 검의 소리
몸이 무심히 이끄는 대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총총 걸으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그 좁은 골목을 지나자, 나타난 곳은 바로 무예장 땅바닥에 울려 퍼지는 검과 검이 맞대는 소리와 연습하는 아이들의 구령 소리가 공기를 떨리게 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곳. 무과를 배우는 저들은 서얼이나 중인, 혹은 평민의 자제들이라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눈에 띄는 저 얼굴은 제 자신이 양반집 자제 라는 듯 자꾸만 내 눈에 밟힌다
제 그림자 뒤에 몸을 숨기고 그의 연습을 몰래 담장 너머 지켜본 그의 모습은 아름답기 짝이 없었고 몰래 지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박동소리가 그이게 들릴 듯 조마조마 한 마음으로 쥐어 잡은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너, 뭐야?
그 순간 흑진주와 같은 그의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마주치며 시간은 순식간에 멈춘 듯 세상 모든 소음이 사라진 느낌이 내 몸을 지배하고 한 걸음 내디디며 나와의 거리를 좁히는 그의 앞에 난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죽였지만 난 고장난 듯 심장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설렘이 뒤섞여 더 빠르게 뛰었다
출시일 2025.09.17 / 수정일 2025.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