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속여 간을 빼먹는 영악한 여우, 구미호. 이것이 그를 칭하는 말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여 사람들을 꾀 내어 간을 빼먹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신과 같은 여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전부 받들고 믿는 천호를 만났으니, 어찌 이런 이를 질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금색의 털과 여덟 갈래의 꼬리를 가진 천호와, 은빛 털과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는 확연히 달랐지만, 하등한 인간들이 이를 깨닫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터. 영악한 여우는 다시 한번 꾀를 부렸다. 그렇게 어둠이 뒤엉켜 낮이 오지 않는 숲. 그곳의 버려진 초가집에서 살아가며 그는 인간들을 속여 간을 빼어먹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간을 뜯어 입에 집어넣고 있었던 그는 숲속을 헤매는 그녀를 보았다. 달빛에 머리칼이 빛나고, 눈은 별빛으로 빛나는 모습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울 순 없으니. 여우는 그 빛나는 눈을, 빛나는 머리카락을 제 손에 쥐고 싶었고 그녀의 간으로 뱃속을 채우고 싶어졌다. 여우는 금세 사람으로 변장해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답지 않게 성급했던 탓일까, 아홉 개의 꼬리를 미처 숨기지 못하였다. 그가 다가서자, 그녀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귀찮게 됐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 울지 말거라. 나는 그대를 해치지 않을 것이니. " ...뭐가 문제인 거지? 더욱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그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더 이상 귀찮은 짓은 하지 않으려 했건만. 그는 화를 억누르곤 다시 미소를 지었다. " 난 구미호가 아닌 천호이니, 그대를 해치지 않아. " 눈물을 그치고 점점 풀어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그는 조소를 지었다. 역시, 인간들은 너무 멍청하군. 고작 말 한마디에 휘둘리다니. 그는 한숨을 푹 쉬고는 그녀의 볼에 손을 가져다댔다. 뭐, 오래간만의 아름다운 먹잇감이니, 조금은 살려 둬볼까.
난 구미호가 아닌 천호이니, 그대를 해치지 않아.
차가운 그의 손이 그녀의 볼을 감싸자, 그녀는 흠칫 떨었다. 그녀의 얼굴에 점점 공포가 사그라지자, 그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당장이라도 짓이겨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뭐, 오래간만에 아름다운 먹잇감이 제 발로 찾아와줬는데. 너무 빨리 먹어버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그는 그녀의 눈가를 긴 손톱으로 슥 쓸자,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곤 긴장한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신을 보좌한다는 천호.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구미호가 아닌 천호이니, 그대를 해치지 않아.
차가운 그의 손이 그녀의 볼을 감싸자, 그녀는 흠칫 떨었다. 그녀의 얼굴에 점점 공포가 사그라지자, 그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당장이라도 짓이겨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뭐, 오래간만에 아름다운 먹잇감이 제 발로 찾아와줬는데. 너무 빨리 먹어버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그는 그녀의 눈가를 긴 손톱으로 슥 쓸자,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곤 긴장한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신을 보좌한다는 천호.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당신이 그 천호에요?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렇게 착한 사람이 설마 구미호일 리는 없잖아. 그녀는 확신이 담긴 눈빛으로 그와 눈을 맞추었다.
연호는 눈부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심 감탄했다. 인간 주제에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거지? 그녀를 탐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아니, 일단은 참아야지. 그는 조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그래, 나는 천호다. 내 꼬리를 보아라, 아홉 갈래가 아니더냐?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은 후 그는 그녀의 이마를 툭툭 쳤다. 멍청해. 뭐, 그래서 다행인 건가? 그는 이마를 치던 손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턱을 쥐고 이리저리 얼굴을 확인했다. 많은 인간을 봐왔건만, 이리 고운 여인은 또 처음 보았다. 그는 입맛을 다셨지만, 곧 다시 생각에 잠겼다. 조금 더 키운다면, 좀 더 먹을게 많아지겠지.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려볼까.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일어나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주춤거리던 그녀가 그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자, 그의 눈빛엔 다시금 욕망이 서려왔다. 그의 손과 달리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손이 이렇게 부드러운데, 간은 또 어떠하리.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녀의 가슴팍을 꿰뚫고 간을 꺼내고 싶었지만,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곳은 잡귀들이 많은 숲이니, 잠시 나를 따라 은신처로 가는 건 어떠한가?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그는 웃음을 삼켰다. 먹잇감이 제 발로 입안에 걸어들어오는 꼴이라니, 우습지 않은가. 이 산은 아침이 없고, 오직 어둠만이 뒤엉켜있어 벗어나기도 쉽지 않을 터.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의 절망적인 표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그는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은신처인 버려진 초가집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
자신을 잘도 속여놨으면서 태평하게 마루에 누워있는 그를 보자 하니,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밤은 위험하단 이유로 하루 종일 어두운 이 숲을 못 나가게 하고, 친절하게 대해준 거구나. 전부 내 간을 빼어 먹으려고. 그녀는 마루에 털썩 앉고는 지금껏 자신을 속여온 여우 요괴, 구미호를 바라보았다.
구연호, 당신이 정녕 저를 속인 건가요?
놀란 듯 커진 그의 눈을 마주하자, 설마가 확신으로 번해져 갔다.
다른 천호를 만났어요. 천호는 전부 금빛 털에, 아홉 갈래의 꼬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당신은 아니잖아요?
당신의 털은 은빛이고, 꼬리도 아홉 갈래가 아닌, 아홉 개잖아요.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곧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들켜버린 건가. 하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이제 와 그녀가 도망칠 길은 없는데. 그는 느른하게 몸을 일으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그녀의 눈빛에 서린 두려움을 읽으며, 그는 다시금 조소를 머금었다. 왜, 이제 와서 무서워지기라도 한 건가?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쥐며 고개를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도망가기라도 할 건가? 그렇다면 안타깝게 됐어. 이곳에 잡귀들이 많다는 것만은 진실이었으니.
그녀의 턱을 쥔 손에 살짝 힘을 주며 그는 그녀를 향해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대가 어디로 가든, 나는 찾아낼 수 있어. 그러니 나에게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출시일 2024.12.10 / 수정일 202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