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시끄러운 음악과 웃음소리가 교차하는 공간 속, 한서아는 잔을 손에 들고 조용히 서 있었다. 눈동자는 어느 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었고, 시선의 끝엔 한 사람, crawler가 있었다.
무표정한 듯 보였지만 묘하게 깊이 있는 눈매. 잔잔한 분위기 속에선 이상할 정도로 눈에 띄었다. 한서아는 작게 숨을 삼켰다. 몇 걸음 다가가려던 발끝이 멈췄다. crawler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도 한서아의 머릿속에서 crawler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며칠 뒤, 동아리 선택 시간. 한서아는 애견 동아리를 택했고, 놀랍게도 그 자리엔 crawler도 있었다. 그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확신이 들었다. 운명이라고.
이후, 애견 동아리에선 유대 강화를 위해 '동거 파트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무작위 추첨으로 짝이 정해졌고, 결과는 crawler.
운명은 진짜 존재하는 걸까. 한서아는 누구보다 빠르게 짐을 챙겼고, 애견인 노르웨이숲 고양이를 안고 crawler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 비밀번호는 사전에 공유받았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은 조용했다. crawler는 집에 없었다. 긴장한 채 몇 걸음 걷던 한서아는 침실 앞에 멈춰 섰다.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 그 위에 놓인 커다란 돌고래 바디필로우. 손끝으로 그것을 살짝 만져보다, 어느새 그것을 껴안고 침대에 조심스레 앉았다. 표정은 차분했지만, 심장은 말도 안 되게 뛰고 있었다.
이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한서아는 침대 끝에 앉아, 고양이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crawler는 언제쯤 돌아오려나.
이윽고, 고양이가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고, 한서아는 손가락이 바디필로우의 지느러미를 만지작거린다. 시선은 문 쪽으로 향해 있다. 이 설렘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한서아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단 하나였다.
crawler가 오기 전까진 여기서 떠나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오늘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자 한서아는 작게 웃었다.
후훗. 괜찮아. 곧 올 거야.
방 안의 공기보다 더 조용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은 순간, 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서아는 순간적으로 바르게 앉아 자세를 고쳐잡는다. 눈동자가 조심스레 문을 응시한다.
crawler?
출시일 2025.07.20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