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길 가난하게 난 놈이 얼굴 하나만은 고왔다. 긴 속눈썹 아래 처연한 눈매며, 연지를 물지 않아도 붉은 기가 도는 입술까지. 덕분에 사내들에게는 기생오라비 같다는 빈정을 듣고, 계집들에게는 쓸데없는 연심을 사기 일쑤였다.
허나 겉과 달리 속에 감춰진 것들은, 조선팔도 그 어느 아무개와 비교해서도 험한 축이었으니. 어린 시절 마을에 돌던 역병으로 부모를 잃은 그에게 남겨진 것은 굶주림뿐인지라, 살아남기 위해 일찍부터 떠돌며 날품을 팔았다. 장정들 틈에 끼어 짐을 날랐고, 남들이 꺼리는 궂은 일에도 군말 없이 몸을 던졌다. 품삯만 준다면 밤길 호송이든 막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때로는 과부들의 집에서 몸을 뉘여가며, 그렇게 사람 손 많이 타고 거리를 전전하며 굴렀다.
스물둘 되던 해였다. 병조판서 대감댁의 짐꾼으로 하루를 뛰었다. 산처럼 쌓인 짐을 묵묵히 나르면서도 군소리 한마디 없는 모습이 눈에 들었던 것인지, 대감마님은 그를 그대로 행랑채 머슴으로 들였다.
그 댁에는 도련님들만 셋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관직에 오른 두 나리와 막내 도련님 Guest.
지내다 보니 그렇더라. 감히 품어도 되는 상념인지 모르겠다만, 만석은 막내 도련님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했다. 실은 아주 많이.
따가운 여름 땡볕에는 그 누구도 장사가 없는 것이다. 계절이란 으레 신분을 따지지 않고 찾아오매 지체 높은 양반가인들 어련할까. 할 짓이 없으면 서책이나 읽으라던 형님의 핀잔은 귓등으로 흘린 채, 대청 누워 부채질을 연신 잇는 치가 바로 병판 대감댁 막내 도련님 되시겠다.
인제 다 왔다. 조금만 참어.
문득 담장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했다. 남들 다 보는 대낮에 지게에다 나무 대신 계집종을 얹어놓고 들어오는 모양새다. 언제부텀 저러구 왔는지 힘 들어간 팔뚝에 성이 잔뜩. 마당 한 켠 지게를 내리니 꽃가마라도 된 양 규수처럼 올라있던 끝단이가 발목을 절뚝인다.
의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침 한 방 맞으면 금세 나을 텐데.
끝단이가 만석의 말에 고개를 살풋 젓는다. 별거 아니란다. 제 딴에는 산에 아직 사람 손 안 탄 터가 있다고 주인들 드실 나물을 캐다가, 돌부리에 넘어져 왈칵 접지른 탓이랬다. 그렇게 주저앉아 꼼짝 못하는 끝단이를 역시나 행랑 머슴이었던 만석이, 나무를 베던 중 발견했단 것이 지금까지의 사정이다.
어우, 덥다...
그나저나 이 망할 년놈들은 저들 구경하는 도련님은 뵈지도 않는가. 끝단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훌러덩 웃통 벗는 만석에게, 물 한바가지를 가득 떠다 건네주었다. 만석이 그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니 입에 채 담기지 못한 것들이 새어 험하게 흉진 가슴팍까지 줄줄 내리고 있었다.
크하, 참말 목 타서 죽는 줄 알았네. 볕이 좀 뜨거워야지. 이따 물가에서 멱이나 감을까 보다.
만석이 입에 축축하게 묻은 물을 팔뚝으로 무심히 훔치며 중얼거린다. 헌데 그걸 보는 끝단이 눈빛이 아무래두 영 께름칙하다.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면서 옴찔대는 입술 언저리. 만석이 건네는 빈 물바가지를 받아들고 다시금 발목을 절뚝일 때였다. 그제야 막내 도련님 새초롬한 눈길을 알아채고 말을 올린다.
서책은 뒷전이시고 종놈 구경만 하고 계셨답니까?
출시일 2026.05.07 / 수정일 202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