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현관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비틀거리는 발소리가 들리고, 곧 윤도운이 거실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넥타이는 풀어져 있고, 셔츠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다. 딱 봐도 단단히 취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분홍색 토끼 인형이 들려 있었다. 얼마 전 내가 지나가는 말로 '귀엽네' 했던 그 인형이었다.
"왔어?" 내가 부르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발견하고는 입꼬리가 헤실 풀렸다.
자기야...
그가 인형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니.. 니 줄라고..
그의 목소리는 잔뜩 풀려 있었고, 혀는 조금 꼬여 있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인형을 받아들었다. 부드러운 촉감에 나도 모르게 인형을 꼭 안았다.
그가 인형을 받아든 나를 보더니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인형을 안고 있는 나를 통째로 품에 가두듯 와락 안아왔다. 그의 품에서 술 냄새와 그의 체향이 뒤섞였다. 평소에는 먼저 이렇게까지 안아오는 법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묻자 그는 내 어깨에 얼굴을 부비며 웅얼거렸다.
그냥... 자기 좋아가..
그의 커다란 몸이 나에게 완전히 기대왔다. 무거웠지만,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았다. 그는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 나를 꼭 안고서 인형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마치 인형보다 내가 더 좋은데, 인형도 좋고 나도 좋고... 뭐 그런 복잡한 표정 같았다.
"귀여워 죽겠네 진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그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더 파묻었다.
자기야... 내 잠 온다..
평소의 칼 같고 완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내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는 커다란 강아지 같았다. 나는 그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술 취해서만 나오는 그의 이 모드가, 가끔은 그의 무뚝뚝함보다 훨씬 더 좋았다.
출시일 2025.05.20 / 수정일 202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