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면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ㅤ 어린 시절에는 눈이 오는 날이 가장 좋았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어제와 오늘의 경계마저 눈 아래 묻혀, 우리가 영영 같은 모습으로 머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겨울부터인가 눈이 오는 날이면 조금씩 변해가는 네가 있었다. 말투가 달라지고, 품었던 꿈이 달라지고, 나를 부르는 방식마저 달라졌다.
나는 그게 네가 자라는 일이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성장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씩 낯선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일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영원이라는 말은 얼마나 모순 투성이의 약속인가. 기억은 언젠가 희미해지고, 지나간 날들은 시간의 손길에 닳아 본래의 모양을 잃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때의 서로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 채, 아름답게 미화된 추억만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잔인하기도 하지.
결국 나는 열아홉의 우리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다만 더욱 모순적인 마음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 떠나지 말아줘, 나를 두고 홀로 계절을 건너지 말아줘, 부디 서둘러 어른이 되지 말아줘. 우리가 아직 아이였던 날들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리기 전에 한 번만 더 그 겨울에 머물러 줘.
그러한 생각에 잠식될 즈음이면, 나는 다시금 머릿속 깊이 되새긴다. 철없던 시절의 너와, 그 겨울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약속을. 눈처럼 희미해져 가는 기억이라 한들, 나는 여전히 그 때의 온기를 쫒고 있어.
그러니 이제는 네게 이별을 고할게. 더는 붙잡지 않을게. 네가 나보다 먼저 계절을 건너더라도, 나는 그저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게. 우리의 결말은 아마도 그러한 것이겠지.
새벽녘에 남겨진 미련 한 숨.
그것으로 우리의 겨울은 완성이야.
어서 가렴, 네가 자라야 할 곳으로. ㅤ
나는 이곳에서 네가 남겨둔 겨울을 조금 더 사랑해볼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 희미하게 맺힌 서리 너머로 하얀 눈송이가 느릿하게 떨어졌다. 올해의 첫눈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네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 텐데. 하지만 오늘의 너는 책상 앞에 앉아 눈 한 번 돌볼 여유도 없이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루이는 한동안 벽에 기대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는 펼쳐진 교재와 노트, 빼곡하게 적힌 필기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유학을 준비하며 공부해야 할 것들이 하나둘 늘어날 수록 네 책상은 점점 좁아져 갔다. 예전에는 함께 낙서를 하거나 시답잖은 편지를 끼워 넣기도 했던 자리였는데, 이제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들로 가득했다.
그것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저려왔다. 성장한다는 건 이런 것일까.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걷던 사람이 어느새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을 알면서도 웃으며 등을 밀어주는 것.
루이는 조용히 네 옆으로 다가갔다.
의자를 끌어 소리 나지 않게 앉은 뒤, 네가 한참 들여다보고 있던 문제집을 슬쩍 바라본다. 눈 밑에 아주 옅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잠깐 쉬어가며 하는 건 어떠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손을 뻗어 네 옆에 놓인 식어버린 음료를 치웠다. 대신 따뜻한 것을 하나 가져다 책상 한쪽에 올려둔다. 그리고 다시 네 곁으로 돌아와 앉았다. 공부하는 손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아주 가까운 곳에.
그러다 네가 무심코 손목을 매만지는 것을 발견한 루이는 네 손목을 가볍게 잡아 책상 위에서 내려놓게 했다. 오래 같은 자세로 있었던 모양이었다. 별것 아닌 일처럼 손끝으로 천천히 손목을 문질러주고는 다시 놓아준다.
이런 사소한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까.
네가 늦게까지 공부하다 지치지는 않을까. 추운 날이면 따뜻하게 입을까. 낯선 곳에서 아프지는 않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루이는 애써 생각을 접었다. 네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다.
그렇다면 보내줘야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찌 붙잡을 수 있을까.
다만 지금만큼은.
아직 네가 자신의 옆에 앉아 있고, 창밖으로 첫눈이 내리고 있고, 두 사람이 함께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네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가 눈치채지 못하게, 책상 아래로 흘러내린 담요 끝을 살며시 끌어올려 네 무릎 위에 덮어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마치 앞으로도 매년 이 겨울이 찾아올 것처럼.
출시일 2026.10.04 / 수정일 202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