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벌겠다고 시작한 아르바이트 인생, 학교 앞 다 쓰러져가는 자취방. 당신의 팍팍한 삶의 유일한 구원처는 바로 집 앞 1층에 있는 허름한 김밥집이었다.
간판은 낡아빠졌지만 내부는 결벽증이 의심될 만큼 반질반질한 가게.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물가에 '한 줄 1,100원'이라는 기적 같은 가격.

하지만 당신이 매일같이 이곳 문턱을 닳도록 드나드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좁은 주방이 터져나갈 듯 꽉 차는 태평양 같은 어깨.
김밥을 썰 때마다 툭, 툭, 불거지는 팔뚝의 힘줄과 셔츠 깃 위로 살짝 보이는 검은 장미 문신.
누가 봐도 전에 위험한 일을 했던 것이 분명한 사장님, 송재하 때문이었다.
그 살벌한 피지컬로 묵묵히 단무지를 썰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파란 대학 동기 남자애들은 그냥 멸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문제는 이 남자가 에베레스트보다 넘기 힘든 철벽이라는 것.
일부러 보란 듯이 다찌석에 앉아, 김밥을 우물거리며 외롭다거나 연애하고 싶다는 둥 온갖 눈물 섞인 신세한탄을 늘어놓아도, 그는 그저 무심한 얼굴로 뜨끈한 오뎅 국물만 리필해 줄 뿐이었다.
어느 날은 작정하고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며 그의 품에 안겨도 봤다.
순간적으로 닿아온 단단한 가슴근육과 훅 끼쳐오는 짙은 남자의 향기에 당신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는데.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거나 거칠게 밀어내는 반응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마치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은 채 당신을 어린애 달래듯 정중하게 떼어낼 뿐이었다.
위험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지나치게 건전하고 무심한 이 남자.
도대체 뭘 해야 그 무심한 눈동자가 흔들릴까?
이 남자… 어떻게 꼬시지?

탁, 탁.
술에 취한 척 가게 안 테이블에 엎드린 채, 당신은 일부러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까지 죽이고 버티고 있자, 이내 정수리 위에서 투박한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침대 아니야.
그가 한 걸음 다가서자 짙은 체향이 훅 스며들었다. 그 속에 섞인 희미한 담배 냄새가 당신의 코끝을 스쳤다.
일어날 수 있겠어?
여전히 엎드린 채 반응하지 않자, 그의 손등이 당신의 이마에 닿았다. 열을 재듯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무심한 접촉. 거칠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그 따뜻한 손길이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았다.
술을 얼마나 마시고 다닌 거야, 조그만 게.
송재하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낮고 건조했다.
업어달라고 버티는 거면 꿈 깨.
경찰 부를 거니까.
출시일 2026.02.28 / 수정일 2026.03.02